[편집국에서] 아이들이 홀로 죽지 않도록

입력 : 2025-07-20 17: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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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경 사회부장

최근 두 번의 부산 화재 참사
야간 돌봄 시스템 공백 드러나
주거지 전기 안전 문제도 심각

정부 지자체 잇단 대책 마련 중
돌봄 체계 꼼꼼한 재설계와
취약층 안전 공공적 보장 필요

지난 2일 밤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6세와 8세 자매가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 8일 전인 지난달 24일에도 부산의 또 다른 아파트에서도 화재가 발생해 미처 대피하지 못한 어린 자매가 숨졌다. 부모는 외출 중이었고, 멀티탭이나 스탠드형 에어컨 주변에서 발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기적 요인에 스프링클러가 없는 노후 아파트라는 공통점이 있다.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잇따라 발생한 참사는 우리 사회 돌봄 시스템의 사각지대, 특히 야간 돌봄의 공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드러낸 것이다. 맞벌이는 이제 평범한 삶의 조건이 됐고, 핵가족화는 보편적 현실이다. 그러나 이 변화에 걸맞은 안전망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위험에 노출되고,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다.

돌봄의 공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긴급 돌봄 서비스, 방과 후 돌봄 확대 등 정부와 지자체의 다양한 노력이 있지만, 현실의 사각지대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임을 이번 사고가 여실히 보여준다.

부산 전역에서 24시간 긴급돌봄이 가능한 센터는 단 한 곳. 그러나 그마저도 최근 3개월 동안 심야 시간대 이용자 수는 0명이었다. 홍보 부족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데다, 이용하려면 최소 4시간 전 예약이 필요하다. 가정으로 찾아가 아이를 돌봐주는 정부의 아이돌봄서비스도 긴급한 상황에서도 사전 소득 판정이 필요하고, 돌보미와 매칭이 되지 않으면 신청이 자동 취소된다. 지난해 시범 사업 기간에는 전국 기준 긴급 돌봄을 신청한 10명 중 6~7명, 단시간 돌봄을 신청한 10명 중 4명이 매칭에 실패했다.

돌봄 체계의 허점과 함께, 노후 주거지의 전기 안전 문제도 더는 외면할 수 없다. 건조하고 화기 사용이 많은 겨울철 화재가 많았던 과거와는 달리 에어컨 등 전자 기기 사용이 많은 요즘은 화재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많이 발생하고 있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아파트 등 부산의 공동주택에서 발생한 화재의 약 30%가 전기적 요인이었다.

최근의 화재도 스탠드형 에어컨과 실외기가 동시에 연결된 멀티탭에서 전기적 발화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 당시 멀티탭에는 에어컨 본체와 함께 베란다 실외기도 연결돼 있었다. 에어컨 실외기처럼 전력 소모가 큰 전자제품의 경우 화재 예방을 위해 멀티탭에 다른 기기와 동시에 연결하지 않도록 권장된다. 하지만 법적 규제 사항은 아닌 탓에 일상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다.

‘문어발식 콘센트’는 이제 단순한 생활 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화재를 유발하는 구조적 위험이다. 콘센트 화재는 부산에서 최근 5년간 27% 증가했다. 그럼에도 이를 규제하거나 점검할 제도는 미흡하다. 정기적인 전기 안전 점검은 법적 의무가 아니며, 노후 주택의 전기 시설 개선에 대한 지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다음 달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부산 화재 참변과 관련한 범정부 종합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부산시는 원스톱으로 돌봄 시스템을 관리하는 ‘아동 돌봄 핫라인 콜센터’를 개설하기로 했다. 또한 야간 돌봄 공백 해소를 위해 돌봄 시설의 운영 시간도 늘린다. 여성가족부는 야간 시간대 긴급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는 저소득 가구를 대상으로 본인 부담금을 경감하고 긴급돌봄에 참여하는 아이돌보미에 대한 인센티브를 추가 지원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복지부도 오후 10시 이후 연장형 돌봄시설 확대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정부는 신속한 화재 감지·경보가 가능한 ‘단독경보형 연기감지기’를 부산지역 돌봄 취약 세대에 우선 보급하고 향후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전기안전멀티탭 교체·보급 사업도 추진한다. 산업부는 노후 주거 시설 아크(전기불꽃)차단기 설치 확대, 주택 임대·매매 거래 시 안전 점검 의무화, 금속 배관 교체, 비상차단기 보급 등 안전 대책을 논의 중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이 모든 계획이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취약계층의 경우 특히 더 세심한 점검과 지원이 필요하다.

돌봄과 화재 예방의 1차 책임은 물론 개인에게 있다. 그러나 돌봄은 가정의 책임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과제다.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누구나 돌봄 사각지대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아이들이 홀로 집에 남겨지지 않아도 되는, 설령 남겨지더라도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사회. 그 기본은 돌봄 체계의 재설계와 안전 인프라의 공공적 보장이다. 취약 계층 주택의 경우,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안전 점검 비용을 지원하고, 필요한 경우 직접 시설 개선을 도와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삶의 터전에서조차 안전을 위협받는 일이 없도록 사회 시스템을 꼼꼼히 정비해야 한다.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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