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 ○ 자이언츠

입력 : 2025-08-07 18: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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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 스포츠는 대부분의 경우 지역별 대학 스포츠가 발전해 프로팀이 되는 역사적 경로를 밟았다. 1880년대부터 각 지역의 대학에서 양성한 아마추어 스포츠단은 이후 프로팀이 발전하는 토양을 제공했다. 농구와 미식축구 등 일부 종목은 아직도 프로팀 경기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며 각종 중계방송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기도 하다.

국토가 넒은 만큼 미국의 스포츠는 지역성을 토대로 발전해 왔으며 이 때문에 대학 스포츠단뿐만이 아니라 프로팀의 이름도 지역명이 앞에 붙는 게 일반적이다. 박찬호와 이정후 등으로 인해 우리에게 친숙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이 대표적이다. 철저히 아래로부터 뿌리를 다지며 만들어진 이들 프로팀의 중계방송을 보면 스코어보드에 팀 이름 대신 지역명이 자리를 잡은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올 정도다. 전형적인 상향식 구조가 만든 풍경이다.

반면 한국은 프로팀이 아래로부터 뿌리를 다지며 만들어진 게 아니라 군사정권의 3S(스포츠, 스크린, 섹스) 정책 일환으로 탄생했기에 지역성을 만들 시간은 아예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첫 프로팀인 야구팀 창단에 돈을 댈 수 있는 대기업 이름을 앞세우는 방식을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각 팀을 지역별로 연고를 정해 억지로 지역성을 부여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부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팀이 된 ‘롯데 자이언츠’라는 프로야구팀이었다. 전형적인 하향식 작명이라고나 할까.

2016년께 자이언츠의 성적이 부진한 데다 구단주인 롯데그룹의 부산 홀대론 등이 겹치자 일부 팬들이 팀 이름을 ‘부산 자이언츠’로 부르자는 운동을 펼쳤으나 상향식 몸부림은 더 이상 발전하진 못했다.

최근 불거진 창원 연고 NC 다이노스의 성남 이적설은 한국의 프로팀 이름에 대해 다시 주목하는 계기를 낳고 있다. 팀 이름이 처음부터 지역을 앞에 둔 ‘창원 다이노스’였다면 구단도 지역도 더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고 웬만한 위기나 불화에도 쉽사리 연고지 이전 얘기는 나오지 않았을 터여서다. 한때 부산 연고 프로농구팀이었던 KT 소닉붐도 이름이 ‘부산 소닉붐’이었다면 아마도 2021년 수원으로 둥지를 그렇게 쉽게 옮기진 못했을 테다. 심지어 KT는 프로야구팀도 있으니 이래저래 헷갈리기도 한다.

이름 하나의 무게도 이처럼 가볍지가 않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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