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30년을 맞은 올해 BIFF는 경쟁부문을 도입하며 이전보다 더 크고 화려한 축제의 장을 준비했다. 하지만 축제는 올해로 끝나지 않는다. 내년엔 31회, 후년엔 어김없이 32회가 열릴 것이다. 오히려 30회라는 특별함이 사라지는 내년 이후가 BIFF의 10년, 20년, 나아가 향후 30년을 좌우할 것이라는 얘기에 힘이 실린다. 30회 BIFF는 또 다른 30년을 향한 출발점이다. 어떤 걸 보완해야 하고, 또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BIFF를 쭉 지켜봐 온, 그래서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백화점이냐 전문점이냐
BIFF는 세계에서 가장 대중 친화적인 영화제로 꼽힌다. 1996년 1회부터 지난해 29회까지 해마다 최소 14만 명의 누적 관객 수를 기록했다. 전용관 영화의전당 개관 이듬해인 2012년부터는 4년 연속 20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좌석 제한을 둔 두 해(2020~2021)는 제외했다. BIFF 프로그래머를 포함해 해외 영화제를 오가는 영화인들은 부산만큼 관객이 많이 몰리는 영화제를 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배경에는 독립 다큐멘터리부터 천문학적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까지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취향대로 골라 볼 수 있는 풍성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초대형 영화 백화점’이라는 말이다. 영화 팬으로선 선택지가 넓어 좋지만, 아쉬움을 드러내는 전문가도 있다. 한 영화평론가는 “어느 순간부터 인상적인 아시아 작품은 전주영화제, 다큐는 DMZ영화제로 가야 한다는 공식 아닌 공식이 있다”라면서 “BIFF가 관객 수나 상영작 규모에 집중한 나머지 작품 선정 때 너무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경향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담보하는 건 인력 문제와도 관련되는 만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백화점과 전문점을 동시에 운영하기로 방향을 잡았다면, 주력 상품인 상영작 선정 때 좀 더 과감하고 도전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올드보이를 다시 극장으로
충성 관객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있다. 부산대영화연구소장인 서대정(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는 “BIFF는 전 세계 국제영화제 중에서 가장 젊은 영화제로 볼 수 있다”라면서 “젊은 관객이 많이 찾는 건 바람직하지만, 중장년 관객의 발길이 줄어드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영화제 초창기 때 서울에서 달려온 지인들과 자리를 갖느라 정작 영화를 제대로 못 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는 “최근엔 이들의 발길이 뚝 끊어져 영화 볼 기회가 늘었는데, 이게 마냥 좋은 건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역사가 오래된 유럽 영화제에선 나이 든 관객을 많이 만날 수 있다”면서 “BIFF의 지속 발전을 위해서라도 충성 관객을 다시 영화제로 이끌 방안, 큰돈을 들이지는 않고도 작은 감동을 줄 만한 이벤트라도 마련했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
부산영화평론가협회장을 지낸 박인호 평론가도 비슷한 의견을 전했다. 그는 “BIFF의 확장성을 상징하는 커뮤니티비프와 동네방네비프를 영화제가 끝난 후 추가로 몇 차례 더 운영한다면, 티켓을 구하지 못한 올드팬들도 일상에서 BIFF와 함께한다는 친근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잦은 말썽으로 입길에 오르내리는 예매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관객이 영화제와 만나는 첫 단계가 예매인데, 여기서부터 불만을 초래하면 영화제 전체로 불신이 확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서대정 교수는 “혹시라도 ‘어차피 표는 매진될 건데’라는 생각으로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라며 BIFF의 대응에 아쉬움을 표한 뒤 “서버 용량과 동시 접속자 수만 탓할 것이 아니라, 요일제 시행 등 대안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결국은 사람이 만드는 영화제
BIFF는 그동안 여러 차례 내홍과 외풍으로 큰 파고를 겪었다. 2023년엔 이사장과 집행위원장이 한꺼번에 물러나면서 영화제 개최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까지 몰리기도 했다. 당시 꾸려진 혁신위원회는 5개월간의 활동을 종료하며 임원 선출 공모제 등 제도 개선과 혁신, 소통 강화를 주문했다.
혁신위에 참여했던 미인픽쳐스 안영진 대표는 “조직과 내용을 만들고 채우는 건 결국 사람이다”라며 “70~8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의 3대 영화제가 권위를 갖는 건 전통을 계승하는 사람들로 세대교체가 잘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혁신위 이후 BIFF 지도부 교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안 대표는 “영화제를 운영하는 핵심 인력이 시스템 내에서 자연스럽게 계승되고 교체된다면 큰 흔들림 없이 아시아 영화의 맹주 역할을 잘할 것으로 믿는다”라고 말했다.
안정적 재정 확보의 중요성도 제기됐다. 올해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금 규모는 전체 BIFF 예산의 5%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머지는 지자체(부산시) 보조금과 기업 협찬 등으로 충당하고 있다. 최근엔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 중복 지원 규제 움직임으로 근심을 낳고 있다.
한 영화계 인사는 “정부가 영화제를 국민의 문화 향유권 향상에 기여하는 공공재라는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면서도 “영화제 역시 사회적 기여를 확대해 스스로 가치를 입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주문했다.
또 다른 영화계 인사는 “자생력을 가진다는 것은 영화제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존속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면서 “재정 문제가 개인 능력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시스템 내에서 해결되는 구조를 마련하는 게 가장 좋은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