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섬, 욕지도의 새 가족이 된 걸 환영합니다.”
추석 연휴를 보름여 앞둔 16일 오전 11시 통영 욕지도 마을도서관. 상기된 표정의 주민과 아이들이 삼삼오오 시청각실로 모였다. 단상 벽면에는 ‘욕지도 자녀 동반 전입가족 환영식’ 현수막이 붙었다. 올해 어린 자녀와 함께 욕지도에 새 둥지를 튼 가족들을 환영하려 통영시와 욕지학교살리기추진위원회가 준비한 조촐한 이벤트다.
추진위에 따르면 지난달 대구시에 살던 한 부부가 초등 2학년 자녀 2명을 데리고 욕지도 서촌마을로 이사 왔다. 앞선 7월에는 경북 안동 시민이던 부부도 유치원생 자녀 2명과 함께 욕지도 관청마을 주민이 됐다. 1월엔 통영 시내에 살던 부부가 초등생 자녀 1명과 함께 욕지도 동촌마을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내달에도 초등생 자녀가 있는 서울 시민, 부산 시민 2가족이 욕지도에 정착할 예정이다.
이들 모두 추진위가 기획하고 통영시가 지원한 ‘욕지학교 살리기’ 프로젝트 수혜자다. 추진위는 욕지초등 졸업생과 주민들이 동네 학교를 살리려 작년 9월 결성된 단체다.
욕지도는 통영에서 뱃길로 1시간 30분가량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외딴섬이다. 과거 ‘어업 전진기지’로 명성을 떨칠 땐 주민 수가 2만 명을 넘었다.
이를 토대로 1924년 원량공립보통학교가 개교했다. 현 욕지초등의 전신이다. 이후 100년 동안 75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어 1946년엔 욕지공민학교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욕지중학교가 문 열었다.
하지만 여느 섬이 그렇듯 열악한 정주 환경과 접근성 탓에 인구 유출이 가속하면서 주민 수는 올해 3월 말 기준 1291세대, 1905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이 때문에 전교생이 15명인 욕지초·중학교 역시 폐교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에 추진위는 올해 초 유튜브에 ‘작은 학교에서 시작되는 큰 꿈, 욕지초등학교, 욕지중학교로 오세요’란 영상을 게시했다. 영상에는 자녀와 함께 이주 시 제공되는 주거와 일자리 혜택 그리고 장학금, 공부방, 골프, 스노클링 등 사교육 걱정 없이 작은 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혜택을 담았다.
작은 희망을 품고 올린 영상이었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전국 각지에서 문의가 빗발쳤고, 추진위는 끈질긴 설득 끝에 3학년 학생 1명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학교 인근 빈 집을 전학생 가족을 위한 보금자리로 꾸몄다. 리모델링 비용은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마련했다. 전학생 아버지 일자리는 욕지수협에서 책임지기로 했다. 기대 이상의 호응에 통영시도 빈집 정비 예산 8000만 원을 편성하며 거들고 나섰다.
이날 환영식에는 천영기 통영시장과 욕지도 각급 기관 단체장 그리고 지역 주민 등 50여 명이 함께했다. 환영식은 지역 주민인 정철영, 조광현 씨 색소폰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전입 가족 소개, 환영사, 축사 순으로 진행됐다.
욕지면 주민자치위원회와 관청마을, 동촌마을 주민은 전입 가족에게 입주 축하금을 전달했다. 이어 욕지초등 6학년 김희중 학생이 재학생들을 대표해 새로 전학 온 친구들에게 환영 편지를 낭독했다.
환영식에 참석한 주민들은 “도시와 비교하면 인프라가 뒤진 곳인데도 아이들과 함께 와 줘서 감사하다”며 예산을 선뜻 지원한 통영시에도 고마움을 표했다.
욕지초등 42회 졸업생인 김종대(73) 추진위원장은 “그때만 해도 욕지도에 원량·옥동·양유·도덕초등학교가 있었는데 이제 하나만 남았다”며 “학생 수가 계속 줄어 학교까지 문을 닫으면 인구 소멸이 더 빨라져 섬 자체가 텅 비게 될 것이 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라도 지켜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에 욕지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은 지난해 학교 살리기를 시작했다”며 “새 가족들이 생활하며 주민들과 어울려 지내는 데 조금도 불편이 없도록 추진위가 적극 돕겠다”고 강조했다.
천영기 통영시장도 “욕지도의 기적은 현재 진행형이다. 앞으로도 모든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