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당초 10월로 점쳐왔던 증권가가 최근 들어 ‘11월 인하’로 대거 선회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를 필두로 한은의 핵심 스피커들로부터 부동산 시장 과열 해소와 금융 안정에 방점을 찍는 발언이 잇달아 나오면서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애초 채권 전문가들은 지난 8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기준금리 동결이 결정됐을 당시만 해도 10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부동산 시장이 주요 변수이긴 하지만 미국발 관세로 인한 기업 심리 위축과 수출 감소 문제 등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달 이 총재를 비롯해 한은발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발언이 잇달아 나오자 최근 들어서는 10월 인하도 물 건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달 16일 서울대 경제학부 주최로 열린 특강에서 “금리 0.25%포인트 인하를 한두 달 미뤄도 경기를 잡는 데는 큰 영향이 없는데, 금리 인하 시그널로 서울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더 고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틀 뒤인 18일 미국 워싱턴 D.C 국제통화기금(IMF) 본부 방문 때는 “중립 금리를 고려할 때 금융 안정을 전체적으로 함께 고려해야 하므로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약간 더 높은 금리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특히 시장의 이목이 쏠린 건 신성환 금융통화위원의 발언이었다.
관심을 끈 발언은 “금융 여건 완화(기준금리 인하) 과정에서 금융 불균형이 다시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 당분간 거시 건전성 정책의 강화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로, 지난달 25일 한은이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실렸다.
8월 금통위 회의 때 성장을 우려해 기준금리 인하로 소수 의견을 제시했기에 시장은 신 위원의 기조 변화에 더욱 촉각을 세웠다.
이처럼 한은이 통화정책의 방점을 금융 안정에 분명하게 찍었지만, 주택시장은 강남 등 일부 지역의 가격 상승이 이어지며 과열이 식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달 발표된 소비자동향조사에서 9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하락했으나 주택가격전망지수는 오름세를 지속해 향후에도 주택가격이 쉽게 잡히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김성수 한화증권 연구원은 “강력한 대책과 규제로 더는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서울-지방 아파트 가격 격차가 전고점을 경신했다”며 “지금은 금융 안정에 조금 더 중점을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10월 인하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기준금리 인하 예상 시점을 기존의 10월에서 11월로 변경하고, 더 나아가 “올해 인하가 이번 통화정책 사이클의 마지막 조정이며 내년에는 연 2.25% 기준금리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중앙은행이 중시하는 지표에서 불안한 모습이 확인됐다면 굳이 위험 부담을 지고 인하를 빨리, 그리고 많이 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며 “연내 인하 시기는 11월로 이연될 것이며 부동산 시장이 진정되지 않으면 내년 통화정책 기조에서 ‘추가 1번 인하’도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되며 변동성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을 11월로 예상하면서 “여전히 경기 하방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완화적 기조가 유효한 상태에서 금융 안정 이슈로 여러 차례 금리 인하가 지연되면 시장금리의 변동성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하를 재개했고 추후 점진적 인하 경로를 밟아나갈 것으로 보이는 상황도 한은에 부담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