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생 두 여성 화가 안종연·한기늠의 식지 않는 창작열

입력 : 2025-10-21 09:00:00 수정 : 2025-10-21 1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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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연 초대전, 31일까지 미광화랑
부산 출신…10년 만에 부산 개인전
빛과 유리, 조각, 미디어 아트 등 다양

한기늠 조각가, 회화로 여는 개인전
부산·이탈리아 카라라 오가며 작업
자개로 표현한 달항아리·지중해 눈길

안종연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안종연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한기늠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한기늠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1952년생 여성 화가. 70대의 두 사람은 부산에서 대학까지 다녔지만, 공부하던 시기가 달라서 서로 만난 적은 없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가 무색하게 작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이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10여 년 만에 부산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한 사람은 이런저런 이유로 다니던 대학의 졸업학점을 채우지 못하고 4학년 1학기 때 자퇴를 감행한 뒤 취업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결국은 미국 뉴욕으로 향한다. 그리고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VA) 학부(1989~1990년)를 거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MFA, 1992년)를 취득한다. 한국과 뉴욕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한국의 1세대 여성 미디어 아티스트 안종연 작가이다.

다른 한 사람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사회활동을 하다가 30대 후반 만학도로 미술대학에 진학해 조소 전공 졸업장은 받지만, 늦깎이로 시작한 조각의 세계를 더 알고 싶어 ‘미켈란젤로 대리석’의 원산지 이탈리아 카라라로 떠난다. 이후 카라라 국립미술대학 조각과(1995년)와 인도 국립비스바-바라티 타골대학원 조각과(1999년)를 졸업하고, 또다시 카라라 국립미술대학에서 회화(2005년)도 전공한다. 이탈리아와 한국(부산)을 오가며 작업 중인 조각가 한기늠 작가이다.

안종연 작가의 작품 'Kaleidoscope'(2010). 미광화랑 제공 안종연 작가의 작품 'Kaleidoscope'(2010). 미광화랑 제공
안종연 작가의 작품 'New days dawning'(2009). 미광화랑 제공 안종연 작가의 작품 'New days dawning'(2009). 미광화랑 제공
안종연 작가의 작품 'Light of Moha'(2013). 미광화랑 제공 안종연 작가의 작품 'Light of Moha'(2013). 미광화랑 제공
안종연 작가의 작품 'New days dawning'(2010). 미광화랑 제공 안종연 작가의 작품 'New days dawning'(2010). 미광화랑 제공

안종연 초대전-지금부터

‘빛의 화가’ 모하 안종연이 부산의 갤러리(미광화랑)에서 여는 전시는 2006년 공간화랑 개인전 이후 19년 만이다. 부산에서 연 미술관 전시도 가장 최근이라고 해 봐야 2015년 부산시립미술관 초대전으로 마련한 용두산미술전시관 개인전이었으니 10년 만이다.

그동안 안 작가는 △전쟁기념관 특별전(서울) △진주시립미술관 △잊혀진 습관, 마산 현대미술관 초대전(마산) △예술의 섬 장도 개관 기념전(여수) △빛의 눈꽃송이, 문화비축기지 탱크1(서울) △에미레이츠 팔레스 갤러리(아부다비, UAE) △학고재 초대전(서울) △피닉스아일랜드, 안도다다오글래스하우스(제주)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일찍이 전통 회화 기법을 넘어서 빛과 물질, 공간을 아우르는 확장된 조형 언어를 탐구해 왔다. 초기의 유화 작업인 ‘공방 시리즈’에서부터 스테인리스 슈퍼 미러의 표면을 전동 드릴로 직접 쪼아낸 회화적 조각, 그리고 오늘날 미디어 기반의 빛의 조형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변주와 실험을 통해 자기 세계를 확립해 왔다.

안종연 작가의 작품 'Black of light'(2009). 미광화랑 제공 안종연 작가의 작품 'Black of light'(2009). 미광화랑 제공
안종연 작가의 작품 'Facing the mirror'(2013). 미광화랑 제공 안종연 작가의 작품 'Facing the mirror'(2013). 미광화랑 제공

“저의 하루 루틴은 16시간 정도 작업인데, 그중 8시간은 무언가를 찾는 시간입니다. 작품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 작품은 모든 것이 수행이고 명상입니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수개월씩 걸리는 게 한두 개가 아니니까요.” 그러고 보니 유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스테인리스 비행기 날개에 사용되는 ‘두랄루민’ 표면을 전동 드릴로 쉼 없이 쪼고 또 쪼아서 만든 작업은 또 다른 환상의 세계였다. 그 점들은 어떤 때는 송정 바다도 되고, 윤슬이 되어 빛났다.

미광화랑에서 전시 중인 안종연 작가 작품. 강화유리를 사용한 작업으로 가장 최신작이다. 김은영 기자 key66@ 미광화랑에서 전시 중인 안종연 작가 작품. 강화유리를 사용한 작업으로 가장 최신작이다. 김은영 기자 key66@

가장 최근에는 유리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유리구슬을 직접 만들고 그 안에 LED 장치와 프로그램을 설치해 다채로운 빛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여기에는 유리의 투명함도 있고, 빛의 굴절과 반사로 연출되는 환상의 세계도 있다. 깨진 강화유리로 만든 최신작은 일일이 핀셋으로 붙여 가며 완성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미광화랑 김기봉 대표는 “제한된 공간에서 그의 전모를 보여주기에는 부족할 수 있으나, 평면과 입체, 그리고 빛과 유리의 미디어적 실험에 이르는 다층적 궤적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설명했다. ▶10월 31일까지 부산 수영구 미광화랑(광남로 172번길 2). 관람 시간 오전 11시~오후 6시(일요일 휴관, 051-758-2247 전화 예약 관람). 점심시간(낮 12시~오후 1시) 쉼.

한기늠 조각가의 회화 작품 '청죽'(2025). 김은영 기자 key66@ 한기늠 조각가의 회화 작품 '청죽'(2025). 김은영 기자 key66@
한기늠 조각가의 회화 작품 '구성'(2025). 김은영 기자 key66@ 한기늠 조각가의 회화 작품 '구성'(2025). 김은영 기자 key66@

한기늠 조각, 회화를 품다

한기늠 조각가는 13년 만에 부산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56점의 회화 작품을 전시한다. 당초 설치 예정이던 16점의 조각은 전시 공간으로 삼은 ‘부산법원 열린문화공간’ 층고가 낮아서 결국 설치하지 못했다. 정식 미술관이나 갤러리는 아니지만, 한 작가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지난여름 내내 창문 하나 없는 작업장에서 하루에 10시간 넘게 고생한 보람이 이번 전시 결과물로 나타난 것 같아 기쁘다”고 전했다.

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기존 대나무 조각뿐 아니라 자개를 소재로 한 새로운 회화 작품을 선보인다. 전부 신작이고, 국내에서 대규모 회화 작업을 선보이는 전시도 처음이다.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과 피에타상 조각에 사용한 스타투아리오(Statuario), 일명 ‘미켈란젤로 대리석’은 이탈리아 수백 개의 채석장 중에서 단 한 곳에서만 나옵니다. 거북이 발가락 1mm까지도 표현 가능할 정도로 우수하거든요. 하지만 대리석 조각은 나이가 들수록 힘에 부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엔 충분한 재료가 없어서 이탈리아를 오갈 수밖에 없지만, 이번 자개 작업처럼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다행입니다.”

한기늠 조각가의 회화 작품 '달항아리'(2025). 김은영 기자 key66@ 한기늠 조각가의 회화 작품 '달항아리'(2025). 김은영 기자 key66@
한기늠 조각가의 회화 작품. 김은영 기자 key66@ 한기늠 조각가의 회화 작품. 김은영 기자 key66@
한기늠 조각가의 회화 작품 '지중해'(2025). 김은영 기자 key66@ 한기늠 조각가의 회화 작품 '지중해'(2025). 김은영 기자 key66@

이번 자개 작업을 위해서도 그는 서울로, 원주로, 통영으로 숱한 발품을 팔아가며 자기만의 기법을 터득했다. 자개 밑 작업을 위한 옻칠을 배우러 갔다가 옻이 올라서 죽을 고생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기만의 기법을 터득했단다. “달항아리 작품은 8시간 만에 끝냈습니다. 자개를 일일이 칼로 잘라서 숨소리 하나 없이 그대로 밀고 나간 덕분입니다. 지중해 작업은 제가 살던 곳에서 바로 보이는 바다를 표현했습니다. 자개는 아교로 붙여야 하고, 선풍기를 사용할 수 없어 지난여름 정말 힘들었지만 작업하는 내내 행복했어요.”

2009년 부산에 일시 귀국한 이래 현재는 이탈리아보다 국내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다. 되돌아본 한 작가의 인생도 버라이어티했다. 부산에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꽃꽂이 선생 문하의 최고 사범으로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지만, 삼십 대 후반에 느닷없이 미술대학에 진학한 것부터 그랬다. “카라라에 남겨둔 짐도 있고, 15년 가까이 예술혼을 불사르며 살았던 곳이라 언젠가는 카라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부산법원 관계자는 “‘열린문화공간’이 원래는 법관과 직원들이 밥을 먹으러 가는 통로인데, 너무 아까워서 2023년 10월 전시 공간으로 오픈해, 한 달에 한 명씩 전시를 열고 있다”면서 “지금은 전시 희망자가 많아서 선별할 정도”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작가들에겐 전시 기회를 주고, 우리 직원들은 눈높이를 향상할 수 있으며, 소송 등으로 법원을 찾는 방문객에겐 좋은 전시를 통해 화를 삭이면 좋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11월 4일까지 부산 연제구 부산법원종합청사 지하 1층 부산법원 열린문화공간. 관람 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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