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을 맞은 경남 지역 굴 양식업계가 본격적인 생산 시즌에 돌입한다.
지난여름 역대급 폭염을 무사히 넘겨 풍작이 예상되지만, 정작 어민들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경기 둔화와 늦더위, 긴 연휴 후유증에 소비 심리가 바닥을 치면서 출하를 목전에 둔 지금까지 시장이 형성되지 않고 있어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말 김장 특수 역시 예년만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면서 어민들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 최대 생굴 생산자 단체인 굴수하식수협은 오는 23일 2025년도 햇굴 초매식을 연다. 초매식은 수협 공판장에서 진행되는 첫 경매 행사다.
겨울이 제철인 굴은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6월까지 출하 시즌을 이어간다. 이 기간 통영과 거제, 고성 앞바다에선 4만여 t에 달하는 생굴이 수확돼 전국 각지로 공급된다.
공판장 매출만 1000억 원 안팎이라 지역 경제 낙수 효과도 상당하다. 적게는 20여 명, 많게는 50명 이상 인부로 북적이는 작업장(박신장)이 300여 곳에 달한다. 가공시설까지 포함하면 연관 산업 종사자는 줄잡아 1만 명 이상이다.
특히 올해는 작황이 좋아 초반부터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할 전망이다.
지난해는 역대급 고수온에 이은 산소부족 물덩어리 대량 발생으로 경남 지역 굴 양식장 3분의 1이 초토화 됐다. 이로 인해 출하를 앞둔 성체가 상당량 떼죽음하면서 시즌 내내 물량 수급에 애를 먹었다.
반면 올해는 큰 피해 없이 여름을 넘겼다. 여기에 이례적인 가을장마로 영양염 공급도 활발해 성장은 더 잘됐다.
굴수협 관계자는 “고성 자란만 안쪽에서 일부 청수 피해가 있었지만, 다행히 크게 번지진 않았다”면서 “작년과 비교하면 최소 10% 이상 생산량이 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관건은 소비다. 보통 9월 하순이면 수도권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선주문이 밀려든다. 하지만 올해는 10월 중순이 지나도록 찾는 곳이 드물다.
업계 관계자는 “기호성이 강한 수산물은 부침이 더 심하다 보니 유통업계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일부 물량이 소량으로 풀리고 있지만 예년에 비하면 소수”라고 했다.
이상 기후도 골치다. 굴은 찬바람이 불어야 소비가 살아나는데, 이달 초까지 이어진 늦더위에다 유난히 길었던 추석 연휴까지 겹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지 않고 있다.
어민들은 애지중지 키운 것들이 행여 제값을 받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수요가 없는 상황에 공급만 늘면 산지 가격은 폭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 진작을 핑계로 매일 할인 때리고, 중간 유통상이 가격을 압박하면 어민들은 헐값이라도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더 큰 고민은 김장철이다. 굴 양식업계는 수도권 김장이 시작되는 11월 중순에서 남부 지방 김장이 마무리되는 12월을 연중 최대 성수기로 꼽는다.
하지만 고된 노동에 따른 ‘김장 스트레스’가 상당한 데다, 배추 등 김장 재룟값도 꾸준히 오르는 통에 직접 김치를 담그는 가정은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게다가 최근들어 새우젓이 대체재로 떠오르면서 굴이 설자리는 더 좁아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젊은 소비자들은 굴 특유의 향보다 새우젓이 내는 깔끔함 선호한다. 최대 소비처인 수도권과 내륙지역을 중심으로 이런 경향이 뚜렷해지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유통업계 입장에서도 그해 작황에 따라 부침이 심한 생굴보단 염장 제품인 새우젓 취급이 더 수월하다는 설명이다.
양식업계는 수협을 중심으로 초반 공격적인 마케팅과 판촉 활동을 통해 얼어붙은 시장을 활력을 불어넣기로 했다.
굴수협 지홍태 조합장은 “안팎으로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지만 걱정보다는 더 큰 기대감으로 첫발을 내디딘다”면서 “자연이 만든 천혜의 선물 굴 많이 찾아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