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영화 ‘범죄도시’와 캄보디아 사태

입력 : 2025-10-27 18: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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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익 해외 취업’ 미끼 인신매매 범죄 급증
경남 실종신고 17건… 10건 해제·7건 조사
영화 속 상상력 능가하는 범죄단체의 만행
범죄연관 함정 의심… 경계심 갖고 살펴봐야

2017년 첫 개봉한 한국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는 폭력과 납치, 조직 범죄의 잔혹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과도한 폭력과 거친 언어 등으로 순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았지만, 영화는 연속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국내외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과 다르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그러나 최근 캄보디아에서 잇따르는 한국인 납치·감금 사건은 그 영화적 긴장감이 더 이상 픽션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스크린 속 ‘악당’이 아닌, 현실의 범죄조직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0일 캄보디아에서 귀국한 20대 A 씨는 경남경찰청에 인신감금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그는 지난 7월 1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캄보디아로 출국했다가 그대로 감금됐다.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조직원들은 A 씨에게 몸값으로 3000만 원을 내라고 협박했다.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일까지 시켰다. 휴대전화와 여권 등 소지품을 뺏긴 채 위치를 알 수 없는 건물 3층에 감금됐다.

그러나 A 씨는 다음 날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현지 건물의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며 탈출을 강행했다. 찰과상을 입는 등 다리에서 피가 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인근 민가로 도주했다. 그곳에서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한국 대사관과 연락을 취해 가까스로 귀국했다.

경찰청은 올해 말까지 국외 납치·감금 의심·피싱 범죄 특별자수·신고 기간을 운영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을 납치, 감금하는 등 범죄가 잇따른 데 따른 조처다.

경남에서는 27일 기준 캄보디아 실종 관련 신고가 모두 17건 접수됐다. 다행히 이 중 10건이 해제됐다. 나머지 7건 중 4건은 가족·지인 등과 연락이 돼 현지 영사관을 거쳐 대상자 안전 여부를 계속 확인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는 월 수백·수천만 원 수입, 숙식 제공, 비자 지원 등의 조건으로 사람을 유인한 뒤, 도착 후 여권을 압수하고 콜센터나 온라인 사기 업무를 강요하는 사례가 잇따른다. 특히 캄보디아에는 ‘웬치’라는 범죄 단지가 있다. 웬치는 동남아 보이스피싱 조직 사이에서 쓰는 은어다. 이곳에는 유인당한 외국인이 범죄조직 요구를 거절하면 폭행과 감금이 뒤따르고, 일부는 몸값 협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야만적 행각은 영화 속 상상력을 능가한다는 게 피해자들의 증언이다. 이 범죄 구조는 영화 범죄도시 속 조직범죄의 형태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캄보디아 드림’으로 한국 청년을 유혹하는 모집책, 감시자, 폭력조, 그리고 자금책이 분업화돼 있다.

그 과정에 피해자는 내부에서 철저히 통제된다. 차이점은 영화처럼 일회성이 아니라, 온라인 사기·인신매매·국제 자금 세탁이 복합적으로 얽힌 ‘지속형 범죄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이는 단순 납치 사건이 아니라, 국제 인권 문제이자 외교적 위기다.

정부는 캄보디아 정부와 합동수사팀을 꾸려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패는 여전히 개인의 경계심이다. 상식을 벗어난 고수익 제의와 특혜는 범죄와 연관된 함정이 있다는 의심을 가져봐야 한다.

일부에선 이번 사태를 ‘청년 실업시대가 낳은 비극’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제안을 받은 당사자부터 범죄 연관성에 대해 근본적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해외에서 고수익 일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공식 채널(외교부 해외안전여행, 대사관 등)을 통해 반드시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연락 수단이 메신저뿐이거나 근무지가 불분명하다면 즉시 의심해야 한다. 여권은 절대 타인에게 맡기지 말고, 사본을 따로 보관해야 한다. 또한 출국 전 가족에게 여행 일정과 숙소 정보를 공유하고, 현지 대사관 긴급번호를 저장해 두는 습관이 필요하다.

영화 속 폭력은 관객에게 일시적 긴장감을 주지만, 현실의 범죄는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캄보디아발 납치 사건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스크린 속 장면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의심하고, 확인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경계심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의 가장 현실적인 안전 장비다.

영화와 현실의 가장 큰 차이는 ‘엔딩이 없다’는 것이다. 스크린 속 마석도(마동석 분) 형사는 결국 악을 무너뜨리고 정의를 세운다. 그러나 캄보디아 범죄 단지의 실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범죄는 발생하고 나면 피해가 크고 회복도 더디다. 예방이 최선의 무기다.

김길수 중서부경남본부장 kks66@busan.com

김길수 기자 kks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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