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사의 시작을 알리는 세 인물,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각각 혁신, 능동, 안정의 리더십을 상징한다. 널리 알려졌듯 각기 ‘새가 울지 않으면 죽인다’, ‘울게 만든다’, ‘울 때까지 기다린다’라는 비유는 세 사람의 정치적 성격인 결단력, 유연성, 인내심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이 세 유형의 리더십이 여성 정치가들에 의해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1일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로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와 1993~1996년 일본 최초로 중의원 의장을 지낸 도이 다카코(1928~2014)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1961년 나라현에서 태어난 다카이치는 고베대학을 졸업하고 정치가 양성소 마쓰시타 정경숙에서 수학하며 “20년 후엔 일본 총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1993년 무소속으로 중의원에 당선된 뒤 자민당에 합류해 총무대신 등의 요직을 맡으며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입지를 굳혔다. 일본회의 등 보수 우익 단체와 긴밀히 협력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반복 참배하며 ‘여자 아베’로 불릴 만큼 강경한 보수 이미지를 구축했다. 지난 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보수 우파인 아소파의 지원을 받아 2세 정치인 고이즈미 신지로를 꺾고 승리했다. 그러나 강한 우익 성향을 우려한 공명당이 연립에서 이탈하자, 그는 오사카 지역 정당인 일본유신회와 ‘각외 연립’을 구성해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리고 지난 21일 총리 지명 선거에서 과반 득표(456표 중 237표)에 성공하며 제104대 일본 총리로 취임했다. 30여 년간의 집요한 의지가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가족국가론’ 세계관 견지 다카이치
아베 전 총리 ‘힘에 의한 평화’ 계승
여성 참여·돌봄 불평등에 관심 도이
일본 민주주의 지평 확장에 기여
‘새가 울지 않는 시대’ 다른 방식 답해
한 사람은 평가 완료, 다른 한 사람은?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를 리더십의 모델로 삼은 다카이치는 지난 24일 시정방침 연설에서 “세계의 중심에서 당당히 피어나는 일본 외교를 되찾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기조인 ‘힘에 의한 평화’를 계승해 일본을 다시 강한 국가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는 또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명시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후세에 사죄를 강요하는 자학사관”이라 비판하며 애국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나아가 헌법 9조 평화조항의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유리천장을 깬 인물’로 평가받지만, 그 리더십은 여성적이라기보다 오히려 기득권 남성 권력의 연장선에 있다. 다카이치는 호주(戶主)를 중심으로 한 가족이 거대한 국가를 이루는 토대라고 생각하며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에도 반대한다. 이 제도는 결혼 후 부부가 각자의 성(姓)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일본 사회에서 가부장적 질서 완화를 상징한다. 다카이치는 ‘이에(家)’제도와 ‘가족국가론’이라는 근대적 세계관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대비되는 정치인이 ‘젠더’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대에 일본 여성 정치의 새 지평을 연 도이 다카코다. 효고현 출신인 그는 헌법학자 다바타 시노부의 강연 ‘평화주의와 헌법 제9조’에 감명받아 헌법학을 전공하고 도시샤대학 등에서 강의했다. 1969년 사회당 후보로 첫 중의원에 당선된 이후 12선을 기록했으며, 1986년 일본 최초의 여성 정당 대표(사회당 위원장)에 이어 1993~1996년에는 첫 여성 중의원 의장을 지냈다. 비록 총리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1989년에는 참의원에서 총리로 지명된 일본 정치사상 유일무이한 여성 정치인이었다. 그는 헌법 제9조 평화조항 수호를 정치적 신념으로 삼고, ‘반전·비핵·평화’의 가치를 일관되게 주장하면서 남녀 고용차별과 부계 중심 국적법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해 일본 정부의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서명을 이끌었다. 1989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마돈나 선풍’을 일으키며 “산이 움직였다”는 명언으로 여성들의 참여의식을 일깨웠고 주부층을 비롯한 여성들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또 “여성은 세 번의 노후를 살아야 한다, 부모·남편·자신의 노후”라는 발언을 통해 돌봄의 불평등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렸고, 이는 훗날 개호보험제도(介護保險制度) 논의로 이어졌다.
이처럼 도이는 ‘평화와 진보의 정치’를 통해 전후 일본 민주주의의 지평을 확장한 인물이었다면 다카이치는 ‘힘과 보수의 정치’로 그 흐름을 되돌리려는 듯하다. 도이는 남성 중심의 정치 구조 속에서도 결단과 돌파로 상징되는 오다 노부나가형 리더십을 구현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반면 다카이치의 리더십은 앞으로 그가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평가될 것이다. 과연 도요토미식의 권력집중형인지, 아니면 도쿠가와식의 안정과 조정형인지. 다만 분명한 것은 일본 정치사 속 두 여성 정치인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새가 울지 않는 시대에 어떻게 노래를 끌어낼 것인가’라는 리더십의 과제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답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