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중앙대로 임란 영웅들

입력 : 2025-10-28 17: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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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5월 조선과 일본, 명 등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의 명운을 좌우한 7년 동안의 국제 전쟁이 시작된다. 왜군 선봉장인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제1군 소속 1만 8700명이 대마도를 출발, 5월 24일(음력 4월 13일) 부산 앞바다에 도착하면서 임진왜란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야영을 하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린 왜군은 이튿날인 5월 25일 정발 장군이 지키던 부산진성(현재 동구 수정동)과 윤흥신 장군이 주둔하던 다대진성(사하구 다대포)을 공격한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정발 장군은 25일, 윤흥신 장군은 다음날인 26일 결국 목숨을 잃는다. 요즘의 부산시장직을 수행하던 송상현 부사가 항전한 동래성(동래구 동래시장 일원)마저 26일 왜군 수중에 떨어지는 등 조선의 국운은 순식간에 기울어진다.

송상현, 정발, 윤흥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도주나 화의를 거부한 채 장렬하게 순절한 호국 영웅으로 꼽힌다. 송상현 부사를 기리는 동상은 1978년 부산진구 전포동에, 정발 장군 동상은 1977년 동구 초량동 항일거리에, 윤흥신 장군 석상(2023년 12월 동상으로 교체)은 1981년 동구 수정동 메리츠화재 사옥 옆 쌈지공원에 각각 설치됐다. 하지만 동상들이 설치된 장소는 호국 영웅들이 산화한 실제 장소와 다소 차이가 있다. 더군다나 이 동상들은 모두 부산 중심가를 관통하는 주도로인 중앙대로 옆에 설치됐다. 무슨 이유일까. 더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세 영웅의 정신을 기릴 수 있도록 가장 잘 보이면서도 접근성이 좋은 곳을 건립 장소로 선택했다는 게 가장 유력한 이유로 거론된다. 특히 중앙대로는 1956년 이순신 장군 동상을 모신 중구 광복동 용두산공원과도 가깝다. 더욱이 예전엔 부산포왜전 승전일이자 부산시민의날인 10월 5일이면 중앙대로 동상들의 궤적을 따라 가장행렬 등을 개최, 영웅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도 했다. 이 정도면 중앙대로를 ‘임진왜란 호국영웅 동상길’이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그런데 최근 사하구의회 강현식 의원이 윤흥신 장군 동상을 역사적 관련성이 있는 다대포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사하구 정체성을 높일 수 있는 타당한 주장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부산 임진왜란 영웅들은 시민 모두의 영웅이자 부산 전체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자칫 ‘이전 도미노’ 현상도 우려된다. 현재 동상을 보전하면서 역사 현장에 추가 건립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부산시와 관련 기초자치단체들이 공론화를 거쳐 현명한 결정을 내리길 기대한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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