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처음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농업혁명 이후 또 한 번의 획기적인 경제적 진보는 우리가 흔히 산업혁명으로 부르는 기술 진보로 18세기 말 영국에서 나타났다. 기계와 증기기관을 결합함으로써 생산력의 비약적인 증대를 이룬 산업혁명에 의해 인류는 비로소 수십 세기 동안 이어져 오던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적 발전도 이전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지난 십수 년 동안 회자되었던 4차 산업혁명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산업혁명의 기술 발전을 단계적으로 인식할 때, 이미 우리는 네 번째 단계까지 와 있다는 생각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을 입에 올릴 때에도 경제학에서는 굳이 시기 나누기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과 과학의 발달이 엄청나게 그리고 매우 빠르게 진행돼 온 것은 사실이지만, 크게 보면 그 발달의 양상이 18세기 말에 시작된 산업혁명의 연장선에 있다는 인식에서였다.
지난 10월 1일 오픈AI CEO 샘 올트먼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이재명 대통령을 만났다. 그리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도 연쇄 회동을 하고 협력을 하기로 했다. 그런 얼마 뒤인 지난 14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자이텍스 글로벌 2025’에서 대담을 가졌는데, 그 때 던진 메시지가 예사롭지 않았다.
샘 올트먼은 두바이 대담에서 ‘머지않아 로봇이 로봇을 만들고, 데이터센터가 스스로를 복제하고, 기계가 스스로의 세계를 설계하고 건설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AI(인공지능)가 단순히 생각하는 존재를 넘어 물리적 창조 활동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AI가 내부의 알고리즘과 코드를 넘어 외부적으로 하드웨어를 조립하고 확장하는 존재로 진화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흐름은 산업화의 진정한 새로운 국면일 수 있다.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18세기 말에 시작된 산업혁명과는 질을 달리하는 새로운 산업혁명이 막 시작된 것일 수 있다. 동력과 기계를 결합하여 생산성을 높였던 18세기 말의 산업혁명을 넘어 값싸고 풍부한 지능을 통해 생산력을 높이는 새로운 산업혁명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AI가 미래 경제를 가를 핵심으로 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구촌 양대 강국인 미국과 중국이 미래의 패권을 두고 첨예하게 경쟁하는 부문도 AI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재명 정부의 출범과 함께 AI를 핵심 정책과제로 제시하며 추진하고 있는데, AI이야말로 미래 산업의 가장 중요한 생태계라고 보기 때문이다.
AI가 미래 산업의 생태계라면 부산 경제의 미래도 이런 추이에서 비켜갈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이러한 새로운 전환을 부산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경제구조가 질적으로 달라지는 시기에는 격차를 단번에 따라잡는 점프가 가능하다. 과거 산업혁명에 뒤처진 나라들이 정보시대에 접어들면서 단숨에 도약을 하는 것을 목격했듯이, AI 생태계의 도래는 부산에 위기임과 동시에 기회이다.
이러한 인식은 특히 기존 산업의 침체로 사실상 인구소멸 도시로 분류되고 있는 부산에서 더욱 필요하고 중요하다. 산업 경쟁에서 뒤처진 부산이 다른 도시와 나라들이 걸어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서는 답이 없다. 그런 점에서 작금의 기술 패러다임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물론 AI 역시 자본과 인력 등에서 수도권이 주도권을 쥐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전기를 먹는 산업적 특성상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 또한 상당한 기회가 될 것이다. 이미 전남과 울산이 AI 입지 논의에서 먼저 거론되고 있는데, 이것은 무엇보다 전력 문제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 공급이라면 부산도 강점을 갖고 있는 부문이다. 그리고 향후 지역 균형발전 전략은 전력과 결합되어 ‘지역 생산 지역 소비’의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측면을 부각시키고 준비하면서 부산도 AI 도시로 한발 앞서 나가야 한다. 또 내년에 예정되어 있는 2단계 공공기관 이전에 대한 준비도 좀 더 기술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해양과 금융에 중점을 두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에만 집착하는 것은 좁은 전략이 될 수 있다.
기술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에는 산업에서의 비약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 부산에 필요한 것은 기존의 기술 체계에서 뒤처져 지속적인 침체를 겪고 있는 지루한 관성에서 벗어나려는 과감한 시도이다.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으로 재도약의 기회를 확실히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