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신공항이 들어설 부산 강서구 가덕도 전경. 김경현 기자 view@
국토교통부가 가덕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 기간을 기존 84개월에서 106개월로 늘리겠다고 밝히면서, 공기 문제를 이유로 사업을 포기한 현대건설에 대한 제재가 사실상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 시공사의 판단을 사실상 인정한 모양새가 되면서 국가계약 절차 전반의 신뢰와 책임을 둘러싼 문제까지 제기되는 분위기다.
지난 21일 국토부가 제시한 가덕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 기간은 106개월로, 현대건설이 요구했던 108개월과 불과 2개월 차이다. 국토부는 바다 연약지반 안정화 기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지만, 지난해 입찰 당시 제시한 84개월보다 1년 10개월 더 늘어난 이번 결정이 현대건설의 기존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해 10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현대건설은 기본설계 과정에서 “안전과 품질 확보를 위해 공기 연장이 불가피하다”며 108개월을 요구했지만, 국토부가 “입찰공고 조건을 변경할 수 없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협의가 결렬되자 현대건설은 지난 5월 사업을 포기했고, 사업은 수개월간 중단됐다.
국토부가 제시한 공정 기간이 현대건설이 주장한 공기와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드러나면서 현대건설 제재 논란도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는 현대건설을 국가계약법상 부정당업자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부정당업자로 지정되면 정부 사업 입찰 참가에 제약을 받는다.
하지만 이미 기획재정부가 “국가계약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을 밝힌 데다, 국토부가 공기 연장을 공식화한 만큼 현대건설 제재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정치권에서는 “정부가 사실상 현대건설의 판단을 뒤늦게 수용한 것인 만큼 현대건설에게 불리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이 제기된다.
하지만 현대건설이 기본설계 과정에서 활주로 예정지 시추조사를 전혀 수행하지 않은 점은 여전히 국가계약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현대건설이 기본설계 6개월 동안 활주로 부지의 지반 시추조사를 단 한 차례도 실시하지 않았다”며 “이는 명백한 계약 의무 불이행이자 국가계약법 위반”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김 의원은 현재 이 사안에 대한 법제처 유권해석을 요청한 상태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례가 국가계약 제도의 신뢰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입찰 당시 제시된 조건이 이후 쉽게 변경되면 시공사들이 공기 연장을 부담 없이 요구하는 관행이 굳어질 수 있고, 이러한 흐름이 반복될 경우 재입찰 단계에서도 추가 요구가 이어져 전체 사업 일정이 더 늦어질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