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경계의 바다-아이 웨이웨이와 난민의 얼굴

입력 : 2025-12-17 18: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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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웨이웨이, 여행의 법칙, 2017, 프라하국립미술관, Commons CC BY-NC-ND 2.0 아이 웨이웨이, 여행의 법칙, 2017, 프라하국립미술관, Commons CC BY-NC-ND 2.0

12월 18일은 세계 이주민의 날이다. 수많은 사람이 전쟁과 폭력, 빈곤을 피해 국경을 넘어 떠난다. 그러나 그 길은 언제나 위험으로 가득하다. 지중해의 검은 파도 위에서,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흔적은 뉴스의 숫자로 남지만, 인간의 얼굴은 사라진다. 이 날은 바로 그 잊힌 얼굴들을 기억하는 시간이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역사는 완전한 서사가 아니라, 파편 속에서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진실의 섬광(Aufblitzen)을 포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진실은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부서진 세계 속에서 잠시 빛나는 인간의 존엄이었다. 역사는 거대한 서사보다, 파편처럼 흩어진 기억 속에서 더 깊은 진실을 드러낸다. 난민의 이름 없는 몸, 그 무수한 파편들 속에서 인류의 윤리가 깨어난다.

아이 웨이웨이는 이 시대의 ‘경계의 예술가’다. 그는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 말할 수 없는 자들의 현실을 예술로 증언한다. ‘Law of the Journey’(2017)는 체코 프라하 국립갤러리에 설치된 길이 70m의 검은 고무보트와 300명의 난민 조각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작품이다. 검은 보트 위에 서로 기대어 앉은 인물들은 모두 무표정의 익명이다. 그 얼굴에서 우리는 인간의 보편적 고통을 본다.

아이 웨이웨이의 작업 방식은 벤야민이 말한 ‘파편의 미학’ 그 자체다. 그는 완전한 내러티브를 거부하고, 부서진 현실의 단편들을 배치해 비극의 구조를 드러낸다. 고무보트, 구명조끼, 난민의 잔해 같은 오브제들은 모두 ‘진실의 섬광’을 담는 매개체다.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은 바로 그 섬광의 형태로, 잊힌 자들의 목소리를 현재로 소환한다.

이 작품은 유럽의 난민 위기를 상징하지만, 동시에 인류 전체의 초상이다. 보트는 구원의 상징이자 절망의 무덤이다. 수많은 난민이 이와 같은 고무보트로 바다를 건넜고, 그중 많은 이들이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아이 웨이웨이는 그들의 흔적을 차갑고 거대한 형상으로 되살린다. 벤야민의 말처럼, 진실은 완전한 이야기 속이 아니라 파편 속에서 번쩍인다. 이 거대한 보트 위의 사람들은 파편처럼 흩어진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 그 침묵 속에서 인류의 진실이 섬광처럼 드러난다. 예술은 그 섬광을 붙잡는 행위이며, 인간의 부재를 통해 인간을 증언하는 일이다.

세계 이주민의 날, 우리는 이 거대한 검은 보트를 떠올린다. 그것은 타인의 배가 아니라, 곧 우리의 배이기도 하다. 경계와 국적의 이름으로 갈라진 세계 속에서, 조르주 아감벤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잠재적인 난민이다. 그는 외친다. “내가, 우리가, 바로 난민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금정산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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