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코딩의 계보학

입력 : 2026-01-26 18:08:43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1980년대 중반 대학을 다닌 이 모 씨는 대학 입학 이후 컴퓨터를 알아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포트란’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과학기술 계산용 프로그래밍 언어인 포트란을 문과생인 그가 왜 배워야 했는지 의문이지만 그는 그렇게 포트란을 배우면서 코딩이라는 것을 처음 접했다.

손으로 작성한 포트란 프로그램 소스 코드를 실행해 보려면 펀칭 머신이라는 것을 사용해야 했다. 빳빳한 카드에 구멍을 뚫어 리더기에 집어 넣으면 카드에 뚫린 구멍의 위치에 따라 코딩 내용이 컴퓨터에 입력되는 방식이었다. 수시로 구멍을 잘못 뚫어 에러가 나오는 통에 코딩 숙제 제출을 위해서 일주일을 펀칭 머신과 씨름하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 대학생들은 ‘파스칼’과 ‘C’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느라 바빴다. 역시나 컴퓨터에게 명령을 내리는 방식인 코딩을 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언어 규칙을 습득해야 했으나 코딩 프로그램 제출을 위해 펀칭 머신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위안이었다. 플로피 디스크라는 말랑말랑한 디스크에 코딩한 내용을 저장해 제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당시로서는 거액인 수백만 원짜리 PC를 구매하려고 아르바이트에 열중하기도 했다.

컴퓨터가 미래를 좌우하는 세상이 오고 그 컴퓨터에 지시를 내리는 방법인 코딩을 할 줄 알아야 도태되지 않을 것이라는 강박이 낳은 이런 풍경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프로그래밍 언어가 C에서 ‘자바’나 ‘파이선’ 같은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코딩 숙제를 하는 방식도 플로피 디스크를 벗어나 이메일로 보내거나 클라우드에 저장해 올리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코딩은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이 “국가의 미래”라고 외쳤을 정도로 강조됐다. 국내에서도 초등학교부터 코딩을 필수과목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기도 했다. 하지만 AI가 생활로 스며든 지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코딩은 더 이상 국가의 미래가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AI에게 대화하듯 지시만 하면 알아서 코딩을 해 주는 ‘바이브 코딩’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최근 부산시교육청도 부산형 AI 교육 밑그림에 기존 코딩 대신 바이브 코딩을 포함시킬 기세다. 아직은 바이브 코딩에서도 기존의 코딩 교육처럼 코딩의 기본 원리와 논리 구조를 배우겠지만 그마저도 생략되는 날이 곧 올 듯하다. 단기간에 AI가 만든 변화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