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양대 럭비부 고 윤태일 코치의 가족 사진.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항상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대했던 태일이라면 분명 다른 환자들이 자신처럼 뛸 수 있도록 장기 기증을 했겠다고 생각했어요.”
불법 유턴 차량과 사고로 뇌사 상태가 된 한국해양대 럭비부 윤태일(42) 코치의 가족이 지난달 14일 그의 장기 기증을 결심한 이유다. 윤 씨는 장기 기증과 인체 조직 기증을 통해 환자들에게 새 삶을 선물했다.
지난달 8일 경남 거제시 고현동 한 교차로에서 오토바이를 몰던 그는 불법 유턴 차량에 부딪혀 의식을 잃었다.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부산닷컴 1월 9일 보도)를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 판정을 받았다.
윤 씨 가족은 그가 사고 전 미국 의학 드라마를 보며 남겼던 말을 기억했다. 그는 드라마 속 환자가 장기 기증을 택하는 모습을 보고 “삶의 마지막 순간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다른 곳에서 살아 숨 쉴 수 있고 남은 가족에게도 위로를 줄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은 “아빠가 장기를 기증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아빠처럼 뛸 수 있지 않을까”란 딸의 말에 기증을 결정했다.
그는 심장, 간장, 신장 양측을 기증했다. 또 화상 피해를 입은 어린이 환자 등을 위해 피부 이식을 포함한 인체 조직도 함께 기증했다. 그렇게 4명이 새로운 생명을 받았다. 인체 조직 기증으로 건강을 회복하게 된 이들은 100명이 넘는다.
경북 영주시에서 태어난 윤 씨는 중학생 때부터 럭비 선수로 활동하며 광저우(2010년)와 인천(2014년) 아시안 게임에서 2연속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 공로로 2016년 체육 발전 유공자 체육포장을 받았다.
윤 씨는 부산 지역 럭비계의 은인이기도 하다. 부산시럭비협회에 따르면 그는 2015년 소속팀이었던 삼성중공업 럭비단이 해체되자 거제시 삼성중공업 조선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당시 한국해양대 출신인 조선소 선박 검사관으로부터 “해양대에도 럭비팀이 있다”는 말을 듣고 곧장 부산 영도구로 향했다.
전문 코치조차 없는 럭비부의 열악한 환경을 지켜보며 안타까움을 느낀 그는 재능 기부를 결심했다. 2016년부터 매주 거제도와 영도를 오가며 돈도 받지 않고 럭비부 코치로 활동했다. 선수들과 합숙 훈련을 하기 위해 자신의 연차를 모으기도 했다. 이 덕분에 한국해양대 럭비부는 창단 이래 처음으로 춘계럭비리그에도 출전했다.
그의 헌신은 지역 유망주를 기르는 데까지 이어졌다. 부산 지역 중고등부 럭비팀은 영도제일중학교와 부산체육고등학교 2곳뿐인데, 이 학생들도 윤 씨의 지도를 받았다. 부산체육고는 2024년 전국 춘계럭비리그에서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는 결실도 보았다. 사고 다음 날에도 윤 씨는 대회 출전 준비를 위해 부산체육고 학생들과 일본 출국이 예정돼 있었다. 엘리트 럭비팀에서 온 코치직 제안도 거절할 정도로 부산 지역 럭비계에 열정을 쏟았다.
윤 씨는 평소 밝고 활동적인 성격으로 가족들에게도 깊은 애정을 품었다. 그는 종종 가족들과 함께 한국해양대를 찾았고 부산 지역 럭비인들과도 가족들을 소개해 친밀한 사이로 지내왔다. 그의 아내 김미진 씨는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딸과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며 “마지막까지 멋있고 대단한 사람이어서 정말 고맙고 그립다”고 말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이삼열 원장은 “가족을 누구보다 아끼고 평생을 럭비에 공헌한 그의 사랑과 열정이 이식 수혜자에게 잘 전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국해양대 럭비부 고 윤태일 코치 사진.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김재량 기자 ry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