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초현실주의의 거대한 무대… 피게레스 달리 극장미술관

입력 : 2026-02-12 17:51:28 수정 : 2026-02-12 18: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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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컨시어지 대표

피게레스 달리 극장미술관. 이상훈 제공 피게레스 달리 극장미술관. 이상훈 제공

스페인 카탈루냐 북부의 작은 도시 피게레스(Figueres)는 미술사에서 가장 기이하고도 매혹적인 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달리 극장미술관(Teatre-Museu Dalí)이다. 이곳은 단순히 초현실주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을 모아둔 미술관이 아니라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설치미술이자, 달리라는 인물의 정신세계를 압축해 놓은 공간이다. 이름에서와 같이 처음 용도는 19세기에 지어진 시립 극장이었다. 스페인 내전으로 파괴된 건물을 1960년대에 달리가 구입해서 직접 복원 및 개조해 자신의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고, 1974년 개관 이후, 달리 극장미술관은 그의 작품을 가장 방대하게 소장한 공간이자, 그가 생전에 직접 기획한 유일한 미술관으로 남았다.

미술관 입구 쪽에서 바라본 피게레스 시민극장 파사드. 이상훈 제공 미술관 입구 쪽에서 바라본 피게레스 시민극장 파사드. 이상훈 제공

달리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피게레스는 바르셀로나에서 북쪽으로 150km 기차로 2시간. 역에서 내려 도시를 걷다 보면, 붉은 외벽 위에 빵 모양 장식이 줄지어 얹히고, 거대한 달걀이 옥상에 올라간 기묘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이 외관은 이미 달리적 상상력의 선언이다. 빵은 생존과 욕망을, 달걀은 탄생과 가능성을 상징한다. 그는 일상적 사물을 낯설게 변형함으로써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관람객의 무의식을 자극한다.

달리 극장미술관 내부 광장. 이상훈 제공 달리 극장미술관 내부 광장. 이상훈 제공

입구를 지나 중앙의 유리 돔 아래에 서면, 마치 거대한 무대 위에 올라선 배우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이 공간은 과거 극장의 무대 자리다. 달리는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큰 초현실주의적 오브제’로 만들고자 했다. 실제로 내부는 회화, 조각, 홀로그램, 입체 설치, 광학적 착시 작품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관람객은 전통적 의미의 전시 감상이 아니라 하나의 체험적 여행을 하게 된다. 또한 미술관에는 ‘기억의 지속’으로 대표되는 녹아내리는 시계 이미지의 변주들, 종교적, 과학적 상징이 뒤섞인 후기 작품들, 그리고 갈라(Gala)를 향한 집요한 헌정이 가득하다. 달리에게 갈라는 연인이자 뮤즈, 그리고 예술적 동력의 원천이었다. 미술관 곳곳에서 반복되는 그녀의 초상은 개인적 사랑과 예술적 집착이 어떻게 신화로 승화되는지를 증언한다.

매 웨스트(Mae West)의 방. 이상훈 제공 매 웨스트(Mae West)의 방. 이상훈 제공

흥미로운 점은, 이 공간이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달리는 자신의 무덤을 이 미술관 중앙 무대 아래에 두었다. 그는 말 그대로 자신의 예술 세계 한가운데에 잠들어 있다. 관람객은 그 위를 걸으며 작품을 감상한다.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이 설정은, 그 자체로 마지막 퍼포먼스와도 같다.

달리 극장미술관 1층 메인 홀. 이상훈 제공 달리 극장미술관 1층 메인 홀. 이상훈 제공

달리 극장미술관은 전시 공간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연극적 장치다. 관람객은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되고, 작품은 벽에 걸린 이미지가 아니라 공간 전체를 장악한 사건이 된다. 초현실주의가 꿈과 무의식, 우연과 상징을 통해 이성의 질서를 전복하려 했던 시도라면, 이 미술관은 그 사상을 건축공간으로 실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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