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발표된 2026년도 부산문화예술 지원 사업 1차 공모 결과는 외형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64억 9963만 원이라는 대규모 재원 투입과 49%에 달하는 역대급 선정률은 부산시가 추진 중인 ‘예술지원 고도화 로드맵’의 의지를 투영한다. 2027년까지 총사업비 100억 원 확충을 목표로 하는 시의 정책적 방향타는 분명 창작 생태계의 확장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수치상의 풍요로움과는 대조적으로 현장 예술가들이 느끼는 체감 지수는 차갑기만 하다. 예산의 증액이 곧 예술적 삶의 질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역설은, 현재의 지원 체계가 창작의 마중물이 아닌 예술가 개개인의 ‘생존 기제’로 고착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세 차례에 걸친 현장 설명회가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나는 왜?’라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분절된 소통과 행정적 피로감 속에서 예술은 공적 자금에 의존하는 수동적 객체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기획재정부가 운영하는 ‘e나라도움’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국가예술지원시스템’(NCAS)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정교한 공공재 배분 장치다. 하지만 이 정교한 시스템은 역설적으로 예술 현장에 ‘행정적 억압’으로 작용한다. 대학 문을 나선 예비 예술인들은 창작의 본질을 고민하기도 전에, 공공 행정의 ‘텔레올로지’(Teleology, 목적론)에 매몰된 성과 지표와 복잡한 정산 체계를 먼저 학습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예술적 상상력은 행정적 가독성이라는 규격화된 틀로 치환된다. 이른바 ‘창작의 기술화’ 현상이다.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경제 논리는 모든 창작 활동에 ‘성공’이라는 가시적 결과를 강요한다. 이러한 강박은 예술 본연의 가치인 실험성과 불확실성을 거세하며, 반드시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결과물을 도출해 내야 한다. 실패를 인정하는 장치는 어디에도 없다.
이제는 공급자 중심의 창작 지원을 넘어, 사회민주주의적 복지 모델에 기반한 ‘보편적 예술인 복지 정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최근 부산 예술인복지지원센터가 원도심 ‘한성 1918’로 이전하며 독자적인 거점을 마련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신호다. 이는 단순히 공간의 접근성을 높이는 문제를 넘어, ‘예술인 복지의 제도적 전위’를 확보했다는 정책적 함의를 지닌다.
센터가 수행하는 예술인 파견 사업, 법률·세무 컨설팅, 생활안정자금 지원 등은 예술가를 시혜의 대상이 아닌 전문직 직업군으로 승인하는 사회적 과정이다. 특히 예술의 공공 가치를 사회적 임금 형태로 보전하려는 ‘예술인 기본소득’ 담론은 예술적 노동을 가치 있는 사회적 행위로 인정하려는 진취적인 시도다. 예술이 더 이상 ‘배고픈 열정’에 기대지 않고, 안정적인 토양 위에서 지속 가능성을 담보 받아야 할 때다.
최근 이재명 정부의 예술인 복지정책의 핵심은 ‘예술을 직업으로 인정하고, 최소한의 생활 안정은 국가가 받쳐준다’는 것이다. 예술인에게 연간 100만 원 수준의 ‘예술인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이 제시되었고, 출범 이후에도 예술인 기본소득 도입 필요성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적 안착을 위해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부산의 센터가 전국 최초의 독립 공간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산문화재단 내부의 부속 기구로 존치되어 있다는 사실은 운영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제약하는 요소다. 복지 행정이 일반적인 지원 사업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과감한 구조 개편이 선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부산시 본예산에서 회계나 독립된 운영 구조를 구축하는 ‘재정적 디커플링’(Decoupling)이 시급하다. 복지 예산이 문화예술진흥기금의 변동성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성을 확보할 때, 비로소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예술가의 복지 로드맵의 실현이 가능해진다. 이는 시의회와 주관부처, 그리고 지역 예술계가 결합한 강력한 정책 거버넌스를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는 과제다.
결국 예술인 복지의 완성은 예술가를 시혜적 복지의 수혜자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사회적 권리의 주체로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독립 기구로서의 법적·제도적 지위를 공고히 할 때 부산의 기초 예술 토양은 비옥해질 것이다.
‘창작이 노동이자 직업이 되는’ 사회는 결코 요원한 꿈이 아니다. 행정의 ‘뷰로크라시’(Bureaucracy·관료주의)를 걷어내고 예술가들이 본연의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향해야 할 진정한 예술 행정의 고도화다. 예술인이 당당한 사회적 시민으로서 그 권리를 보장받을 때, 부산의 문화예술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공공성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