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전 11시 경남 통영시립박물관 1층 세미나실. 모처럼 비린내 나는 작업복을 벗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어민 1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통영해상풍력어업인대책위원회가 한 민간 해상풍력사업자와 상생 협약을 체결하려 마련한 자리다. 대책위는 해상풍력을 둘러싼 사업자와 어민 간 갈등 속에서 지역 어업인 권익을 보호하려 통영 연안어선 종사자 700여 명이 뭉쳐 작년 9월 공식 출범한 단체다. 이후 어민들을 대표해 사업자와 협의를 진행해 왔고 꼬박 반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협약서에는 △사업 추진 전 과정 지속적 정보 공유·협의 △어업인 참여 기반 상생·보상·이익공유 방안 검토 △실무협의체 구성·운영에 상호 협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어민들 입장에 해상풍력은 삶의 터전을 빼앗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대규모 풍력발전단지 건설과 가동이 유발할 소음과 진동, 전자파 등으로 바다 생태계가 심각하게 훼손돼 어장도 초토화될 게 뻔하다는 이유였다. 게다가 하필 그 중심에 통영 욕지도가 있었다. 통상 해상풍력은 수심 20~50m에 평균 풍속이 초속 6m를 넘어야 사업성이 확보되는데, 동·서·남해안을 통틀어 이런 환경적 요건을 충족하는 몇 안 되는 해역 중 하나가 바로 욕지도 주변인 탓이다. 현재 욕지도를 중심으로 발전사업 허가를 받았거나 추진 중인 대형 프로젝트만 4건이다. 총계획 면적은 146㎢, 축구장 2만 3000여 개를 합친 크기다. 이곳에 에펠탑 높이 구조물 130기 이상을 세운다.
문제는 이 일대가 경남 어민에게 마지막 남은 황금어장이라는 점이다. 각종 어류 서식·산란장이자 난류를 따라 회유하는 멸치 떼와 이를 먹이로 하는 각종 포식 어류가 유입되는 길목으로 전국 최고 수준의 조업 밀도를 보인다. 이 때문에 2021년 12월 고시된 ‘경남해양공간 관리계획’에선 ‘어업활동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제대로 뿔난 어민들은 사업 백지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궐기대회와 해상 시위로 맞섰다. 어민들 반발에 대다수 프로젝트는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 장려 정책 기조와 어수선한 정치 상황 등으로 어민들 요구는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대로는 끝이 없다고 판단한 어민들은 결국 타협에 나섰다. 2024년 4월 ‘남해군해상풍력발전대책위원회’가 처음 민간사업자와 손잡은 이후 꼬박 2년 만에 통영대책위도 협상테이블에 앉기로 한 것이다.
10년 넘게 갈등을 겪어온 양 측이 손을 맞잡을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일단은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책위는 실질적인 협력 구조를 통해 해법을 모색해 나가는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기대만큼이나 우려도 적지 않다. 해상풍력에 대한 반감 역시 여전한 데다, 사업 추진에 따른 생태계 교란과 어업 피해를 외면할 수 없는 현실에 섣부른 속도전은 또 다른 어민 간 갈등을 부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이번 협약이 난개발을 부추기는 수단이나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대책위 김종찬 위원장도 이를 의식한 듯 “이번 협약을 장애물 걷어내는 수단으로 삼지 말고, 진정성을 갖고 대화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갈등을 넘어 공존을 택한 어민들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