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마라 벤더, 북한을 ‘사람’으로 읽다

입력 : 2026-08-05 09:54:53 수정 : 2026-08-05 10: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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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독일 사진가 첫 방한 인터뷰
아홉 차례 방북으로 기록한 일상
부산국제사진제서 첫 한국 전시
“공감은 익명성이 사라질 때 피어”
사진이라는 언어로 건네는 안부

2026년 부산국제사진제(BIPF) 참가 차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시오마라 벤더 사진가가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올해의 메인 주제전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은영 기자 key66@ 2026년 부산국제사진제(BIPF) 참가 차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시오마라 벤더 사진가가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올해의 메인 주제전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은영 기자 key66@

2026년 부산국제사진제(BIPF)를 찾은 사진가 가운데 가장 화제의 인물이 아닐까 싶다. 올해 주제 ‘사람 人(인)’의 본전시 ‘빙 휴먼(Being Human·다시, 사람)’의 사실상 문을 여는 전시장 첫머리에는 스위스-독일 출신 사진가 시오마라 벤더(Xiomara Bender)의 사진이 걸려 있다. 다큐멘터리, 인물, 오페라 사진까지 폭넓게 작업해 온 그는 최근작 〈무지개를 기다리며: 북한에서의 10년〉(2024) 수록작을 중심으로 한국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2016년 사진집 〈북한. 꿈의 힘〉으로 독일 사진집상 은상을 받은 그는 이번이 한국 첫 방문이다. 독일 명품 카메라 라이카 글로벌 앰배서더로도 활동하는 그를 지난 2일 메인 전시장인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만났다. 벤더는 작품 속 시선처럼 차분하고도 진지한 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가 아시아에 눈을 뜬 건 10대 인도 유학 시절이었다. 낯선 풍경과 감각은 자연스레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분단국가였던 독일의 역사적 배경 역시 북한을 바라보게 한 중요한 이유가 됐다. 그는 2011년 관광 비자로 처음 북한을 찾은 뒤 2019년까지 10년 가까이 아홉 차례 방북하며 그곳 사람들의 일상을 기록했다. 벤더는 “첫 방문은 사진을 찍기 위해 간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다시 돌아와 북한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니, 하나의 역사와 시대상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가 북한의 변화를 체감한 건 2014년 네 번째 방문에서였다. 첫 방문 때만 해도 한산하고 비어 있는 나라처럼 느껴졌지만, 재방문을 거듭할수록 카페와 거리,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도시의 삶이 분명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걸 보게 됐다고 한다. 벤더는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면서 카페가 생기고, 거리에는 사람이 늘고, 여성들은 하이힐과 화장을 한 채 보다 도시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 변화가 제 관점을 바꿨고, 제가 바라본 북한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의 프레임이 특별한 이유는 북한을 이념이나 정치의 무대로 소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군사적·정치적 장면 대신, 일일이 촬영 허락을 구하며 마주한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에 집중했다. 통제 체제의 상징이 아닌, 구체적인 개성과 감정을 지닌 ‘개인’으로 기록한 것이다.

2026년 부산국제사진제(BIPF) 참가 차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시오마라 벤더 사진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은영 기자 key66@ 2026년 부산국제사진제(BIPF) 참가 차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시오마라 벤더 사진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은영 기자 key66@
주제전 ‘Being Human'(다시, 사람)에 참여한 시오마라 벤더 작가 작품들. 그는 지난 10여 년간 북한을 반복적으로 방문하며, 서구 사진가로서는 드물게 장기적인 시선으로 이 사회의 일상과 풍경을 기록해 왔다. 김은영 기자 key66@ 주제전 ‘Being Human'(다시, 사람)에 참여한 시오마라 벤더 작가 작품들. 그는 지난 10여 년간 북한을 반복적으로 방문하며, 서구 사진가로서는 드물게 장기적인 시선으로 이 사회의 일상과 풍경을 기록해 왔다. 김은영 기자 key66@
주제전 ‘Being Human'(다시, 사람)에 참여한 시오마라 벤더 작가와 그의 작품. 그는 지난 10여 년간 북한을 반복적으로 방문하며, 서구 사진가로서는 드물게 장기적인 시선으로 이 사회의 일상과 풍경을 기록해 왔다. 김은영 기자 key66@ 주제전 ‘Being Human'(다시, 사람)에 참여한 시오마라 벤더 작가와 그의 작품. 그는 지난 10여 년간 북한을 반복적으로 방문하며, 서구 사진가로서는 드물게 장기적인 시선으로 이 사회의 일상과 풍경을 기록해 왔다. 김은영 기자 key66@

한국 전시장에서 목격한 관람객들의 반응은 그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유럽에서는 북한 인물 사진이 대체로 ‘한국 사람’이라는 넓은 범주로 읽히는 반면, 한국에서는 먼저 “한국 사람이다”라는 반응이 나온 뒤 곧바로 “그런데 북한 사람이잖아”라는 인식이 뒤따랐다는 것이다. 벤더는 “한국 사람들은 같은 언어를 쓰는 같은 민족의 사람으로 먼저 받아들인 뒤, 북한이라는 현실을 떠올린다. 그 반응이 저에겐 매우 인상적이었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시오라마 벤더의 작품. 부산국제사진제 제공 시오라마 벤더의 작품. 부산국제사진제 제공

벤더는 사진을 “200년 넘게 존재해 온 하나의 언어”라고 말하며, 사진가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찍는 기술이 아니라 듣고, 기다리고,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미지가 우리를 갈라놓는 데 점점 더 많이 사용되는 시대이지만, 저는 여전히 사진이 그와 정반대의 가까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에게 사진은 멀리 있는 대상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낯선 타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매개라는 것이다.

북한을 다시 찾고 싶은 이유도 분명하다. 그는 북한이 여전히 변하고 있으며, 매번 새로운 도시와 풍경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한 시점의 북한을 고정하는 데 머물지 않고, 변화하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기록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동안 우리가 접해온 북한 사진 대부분이 1970~80년대의 오래된 풍경에 멈춰 있던 것과 달리, 벤더의 프레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는 북한’의 현재성을 생생히 담아낸다. 벤더는 “북한에는 매년 새로운 장소와 도시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다시 간다면 훨씬 더 새로운 것들을 보게 될 것”이라며 그 변화를 계속 기록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편, 그는 북한 작업 외에도 아프리카 사람들을 기록하고 돕는 프로젝트도 함께 이어가고 있다.

시오마라 벤더 사진가가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손수 입력해서 건넨 스마트폰 화면. “공감은 익명성이 사라질 때 비로소 피어난다 시오마라 벤더 사진가가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손수 입력해서 건넨 스마트폰 화면. “공감은 익명성이 사라질 때 비로소 피어난다"는 말을 강조했다. 김은영 기자 key66@

방문 동안 감천문화마을을 둘러보고 서울과 판문점 일정을 앞둔 그는 “한국 커피가 독일보다 맛있다”며 유쾌하게 웃어 보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남북한 모두를 길게 기록하고 싶다는 그는 휴대폰 화면에 직접 말하고 싶은 문장을 적어서 보여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공감은 익명성이 사라질 때 비로소 피어납니다. 제 시선으로 바라본 이웃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결국 그가 사진 속 북한 사람들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 정치가 아니라 삶이라는 의미인 게다. 한국에서 처음 선보인 그의 작업은 멀게만 느껴졌던 북한을 거창한 이념이 아닌 사람의 얼굴로 다시 보게 만든다. 그의 다음 행보도 기다려진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