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분석] 해양수도·균형발전 흔드는 ‘졸속 통합’ 멈춰라

입력 : 2026-09-08 21:00:00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항만공사 통합 추진 거센 후폭풍
부산 등 4곳 모두 고유 경쟁력
통합은 시대착오적 중앙집권
본사 만들면 옥상옥 구조 될 뿐
세계 분권형 항만체계에 역행

부산 동구 해양수산부 청사. 부산일보DB 부산 동구 해양수산부 청사. 부산일보DB

정부의 일방통행식 항만공사(PA) 졸속 통합은 지역균형발전과 해양수도권 구축에 위배된다는 현장의 반발 목소리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섣불리 일원화를 밀어붙이다간 행정 효율성보다 국가 공급망의 안정성과 항만별 경쟁력만 훼손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통합 대신 각 항만의 특성과 역할을 강화하고, 항만의 기능별 협력체계 구축을 지원해 보완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여론이다.

8일 해양수산부는 남재헌 차관 주재로 4개 항만공사 사장단과 구체적인 통합 과정과 주요 검토 사안, 추진 일정 등을 논의했다. 해수부는 통합 로드맵을 마련할 기획단(TF)을 이달 중 출범시키고, 내년 초 로드맵을 확정·발표할 계획이다. 항만공사 통합을 위한 항만공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TF는 로드맵에 따라 기존 항만공사의 청산 및 신설 작업에 본격 착수할 방침이다.

같은 날 오전 세종시 재정경제부 청사 앞에서는 4개 항만공사 노조위원장이 모여 “항만공사 통합은 개혁이 아니라 정부 정책의 실패”라며 통합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정부가 항만공사 간 연계를 강화하고 과당경쟁을 줄이며 해외거점을 공동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항만 현장를 전혀 모르는 소리”라고 꼬집었다.

또 “이미 2011년 같은 문제를 검토했지만 물리적 통합보다 현행 체제에서 협력과 운영 효율화를 강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며 당시 국토해양부의 ‘항만공사 운영 개선대책 마련을 위한 연구’ 결과, 4개 항만공사 통합의 연간 절감효과는 50억 원에 불과했고, 통합에 필요한 행정력과 비용을 고려하면 효과는 매우 미미했다고 공개했다.

실제로, 4개 PA는 각기 장점과 역할이 다르므로 항만 간 과당경쟁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이들 PA는 2003년 항만공사법 제정 이후 차례로 세워졌다. 당시 항만공사법은 중앙정부 관리의 경직성을 탈피하고, PA에 항만 관리·운영 등 주요 권한을 맡겨 급변하는 글로벌 물류 환경에 빠르게 대처하자는 취지에서 추진됐다.

이에 따라 2004년 1월 부산항만공사가 처음 출범한 이후 인천(2005년 7월), 울산(2007년 7월), 여수광양(2011년 8월) 항만공사가 차례로 설립됐다. 이들은 각 권역의 배후 산업과 맞물려 지난 20년 이상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왔다.

PA는 국제적으로 확립된 항만 관리·운영 주체의 개념으로, 단순한 ‘항만회사’라기보다 일정한 항만구역을 기반으로 개발·관리·운영·임대·마케팅·투자 등을 수행하면서 해당 항만의 경쟁력을 책임지는 독립적인 관리주체라는 의미다.

해양수산부 등에 따르면 부산항은 지난해 2488만TEU의 컨테이너 물동량을 처리하며 세계 2위 환적 항만의 입지를 다져왔다. 인천항 역시 수도권 물류와 대(對)중국 교역 핵심 거점으로 지난해 344만TEU의 컨테이너를 소화했다. 정유·석유화학 단지와 직결된 울산항은 전체 물동량의 80%(1억 5746만t)가 액체화물로 채워진 국내 1위 에너지 특화 항만이다. 여수광양항은 포스코 광양제철소와 여수국가산단을 배후에 두고 철광석과 석유화학 원자재 등 연간 2억 7000만t의 물동량을 소화해왔다.

이처럼 4개 항만이 각기 다른 화물과 거점 산업을 토대로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해온 상황에서 통합 한국항만공사를 설립해 단일 조직으로 관리하는 것은 불필요한 ‘옥상옥’ 구조를 만들어 정책 결정의 신속성과 현장 대응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부산항발전협의회 박인호 공동대표는 “세계 주요 항만들이 전문성을 강화하며 경쟁력을 높이는 상황에서 우리가 항만 특화 전략 대신 통합을 결정하는 것은 ‘치킨게임’식 손해만 가져오는, 국가 물류 경쟁력을 망치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