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엄청난 비극이다. 막대한 인명 피해는 물론 공들여 구축한 문명 시설을 송두리째 파괴한다. 제2차 세계대전 등에서 드러났듯이 그 잔인하고 참혹한 행태로 인한 후유증은 세대를 넘어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이어진다. 더욱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기에 해당 국가 경제도 큰 위기에 처한다. 고가의 최첨단 무기 의존도가 높은 현대전은 더욱 그렇다. 따라서 정치, 경제적 관점으로 볼 때 현대전은 단기간에 종료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국과 이란과의 전쟁에서 드러났듯이 요즘 전쟁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최근 발발한 전쟁마다 장기화 양상으로 흐르면서 최근엔 모병제에서 징병제로 전환하는 국가들마저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러시아의 경우 당초 손쉽게 전쟁을 끝낼 것으로 점쳐졌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최근 전쟁은 왜 끝나지 않는 것인가.
지난해 4월 13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수미 지역에서 구조 대원들이 러시아의 폭격으로 시내 버스에서 숨진 민간인 시신을 옮기고 있다. 당시 러시아의 탄도미사일 공격으로 민간인 등 32명이 숨지고 117명이 다쳤다. AP연합뉴스
■ 딜레마 빠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4년 7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종전 중재 시도가 이어졌지만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특사가 두 나라를 방문해 전쟁 종식을 위한 회담 재개를 중재했다. 하지만 미국 특사단이 떠나자마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상대방 거점을 겨냥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난타전을 재개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전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양측이 타협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타협할 만한 절박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양측이 모두 자신들이 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러시아는 “조금 더 싸우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우크라이나도 “조금 더 버티면 더 나은 조건으로 협상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는 것. 다시 말해 양측 모두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현재 타협 비용이 전쟁을 계속하는 비용보다 더 크다고 판단하는 역설에 빠져 있다는 설명이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더라도 상대방이 합의를 이행할 것이라고 신뢰하지 못하는 것도 주된 이유로 꼽힌다. 러시아는 NATO가 동쪽으로 확대돼 우크라이나가 서방 안보질서에 편입되는 것을 자국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면 NATO 등 서방과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지난해 12월 23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지토미르 지역 주거용 건물이 러시아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모습. AP연합뉴스
현재까지 양측이 엄청난 희생을 치른 데 따른 매몰 비용과 국내 정치 부담 문제도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고 있다. 특별한 성과를 얻지 못한 채 평화협정을 체결할 경우 자국 내에서 큰 반발을 초래할 수 있고 이는 정치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양측 모두 자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확실한 승리’와 명분이 필요한 상황이다 보니 현재는 평화협정 체결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달았다는 분석이다.
이 밖에 양측을 효과적으로 중재할 강력한 국제기구가 없다는 점, 전쟁 장기화로 상대방에 대한 적대적 인식이 길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 등도 전쟁 장기화 이유로 꼽힌다. 결국 이 전쟁은 ‘소모전의 역설’에 빠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오늘 협상하는 것보다 내일 협상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믿고 있다 보니 평화협정을 서두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전쟁이 끝나려면 양측이 모두 “앞으로 더 싸워도 지금보다 나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어야 한다. 서로가 극도로 고통스러운 교착상태에 봉착할 때 평화협정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1953년 6·25 한국전쟁 휴전 협정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경우 아직까지 이런 단계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따라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계속 힘을 얻고 있다.
■ 미국과 이란 전쟁, 장기 분쟁 치닫나
2026년 2월 말 본격화한 미국과 이란의 전쟁도 교착 상태에 빠져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이란 전쟁 장기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양측 모두 먼저 양보해야 할 만큼 결정적인 패배 상황에 직면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는다. 즉,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으로 이란의 군사, 핵 시설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지만 이란 정권을 굴복시키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이란 역시 미국을 군사적으로 이길 능력은 부족하지만 미군 기지와 함정, 걸프 지역 동맹국, 유조선 등을 위협하면서 전쟁 비용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미국은 이길 수는 있어도 쉽게 전쟁을 끝낼 수 없고, 이란은 이길 수는 없어도 패배하지 않으면서 버틸 수 있는 비대칭적 교착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난달 19일(현지 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한 여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하하는 광고 옆을 지나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세계 에너지 수송 통로인 호르무즈해협이다. 미국이 이란 군사시설을 파괴하더라도 광범위한 호르무즈 해안 지역에 분산된 이란의 군사력까지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어렵다. 해협을 완벽하게 장악하려면 미국은 현재보다 훨씬 광범위한 군사력과 지상군까지 투입해야 하는 데 정치·군사적 부담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은 대안으로 경제 제재와 해상 봉쇄를 통해 이란의 원유 수출과 경제 활동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이란 경제가 심각한 어려움에 빠진 것은 분명하지만 이란 지도부가 장기전을 포기할 수준엔 이르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이란의 경우 타협 조건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미국은 이란 핵프로그램 제한과 호르무즈해협의 자유로운 항행, 제재를 완화한 뒤 이란이 핵 개발이나 지역 군사활동을 재개하지 않을 것 등을 요구하는 반면, 이란은 제재 완화와 체제 안전, 자국의 핵 권리와 미국과 이스라엘이 다시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더욱이 양측은 서로 상대방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보다 군사력과 경제력을 유지하면서 상대를 압박하는 형국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 4월 21일(현지 시간) 이란 테헤란 엔겔랍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코람샤르-4 탄도미사일이 전시돼 있다. UPI연합뉴스
결국 미국은 이란보다 압도적으로 강하지만 이란을 완전히 점령하거나 체제를 붕괴시키려면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미국 내 전쟁 반대 여론과 11월 중간선거 등을 감안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지상군 투입 등 확전 카드를 꺼낼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과 이란 전쟁은 초강대국의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가 반드시 일방적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 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분명해지는 상황으로 치닫기보다는 제한적 공격과 보복, 경제제재, 협상이 반복되는 장기분쟁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끝나지 않는 전쟁…징병제·무력 충돌 불감증 급증
냉전 종식 뒤 상당수 국가들이 징병제를 폐지했다. 특히 제1, 2차 세계대전의 직접적 피해를 입은 유럽 국가들은 1990년대 이후 징병제를 폐지했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대규모 지상군 병력보다는 미사일 등 최첨단 무기를 갖춘 군대가 효율적이라는 판단도 징병제 폐지에 한몫을 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장기화된 전쟁 양상은 현대전에서도 결국 대규모 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현재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러시아 인근에 위치한 크로아티아가 2025년 징병제 부활을 결정한 데 이어 오스트리아, 키프로스, 에스토니아, 핀란드, 그리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이 남성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다.
스웨덴도 2010년 징병제를 사실상 중단했으나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커지면서 2017년 징병제를 부활시켰다. 특이한 점은 남녀 모두가 징병 대상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모든 청년을 군대에 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신체조건·적성·동기·군의 필요 등을 종합해 필요한 인원만 선발하는 선택적 징병제를 도입했다. 덴마크도 여성을 의무복무 대상에 포함시켜 성중립적 징병제로 전환했다. 2011년 징병제를 중단했던 독일은 조건부 징병제를 도입했다. 자원병을 우선 모집한 뒤 필요한 병력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안보상황이 악화되면 징병제를 발동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기나긴 전쟁에 이어 미국과 이란 전쟁까지 장기전 양상을 띄면서 각 국가들이 과거 징병제로 회귀하는 등 지구촌 안보 상황마저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전문가들은 좀처럼 끝나지 못하는 요즘의 전쟁들이 무력 충돌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이른바 ‘전쟁 불감증’을 확산시키는 것이 가장 우려된다는 의견을 공통적으로 개진하고 있다. 전쟁 없는 평화로운 지구촌을 만들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과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3월 24일(현지 시간) 이란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주 타브리즈에서 구조대원들이 공습을 받은 주거용 건물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