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우리 동네에 공룡이 나타난다면

입력 : 2026-09-09 18: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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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어느날 갑자기 선사시대가 된다면?
뒷마당 쓰레기통 뒤지는 공룡들
사람과 공룡 만나 펼치는 유쾌한 생존극

영화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영화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극장에 외계인이나 괴생명체가 나타나 평범한 가족을 위협하던 시절이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은막 아래 자란 세대라면, 저녁 식사 도중 뒷마당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상상만으로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시절 스크린은 평범한 마을, 가장 보통의 가족을 무대로 삼아 비범한 모험을 펼쳐 보였다. 데이비드 로버트 미첼 감독의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은 바로 그 시절의 정서를 정면으로 소환하는 영화다.

1982년 미국 미시간의 교외 마을 오크 스트리트. 해고당한 사실을 숨긴 채 피자 배달을 하는 아빠 그렉(이완 맥그리거), 작가를 꿈꾸는 엄마 드니스(앤 해서웨이), 천문학도를 지망하는 딸 오드리, 옆집 전학생에게 마음을 빼앗긴 아들 브라이언, 그리고 강아지 스타벅까지. 플랫 가족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중산층 가정이다. 그런데 어느 폭풍우 치는 밤 사건이 발생한다. 마을 전체가 시공간의 틈으로 통째로 빨려 들어가면서, 무려 공룡이 활보하는 아득한 시대에 뚝 떨어진 것이다. 전기도 수도도 끊긴 골목에는 태고의 포식자들이 쓰레기 봉투를 뒤적거리고 있다.

영화의 발상 자체는 단순하고 유쾌하다. 뒷마당에 티라노사우루스가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상상을 영화는 진지하게 밀어붙인다. 스필버그식 엠블린 모험담의 정취, 즉 가족이 위기를 함께 넘기며 끈끈해지는 그 익숙한 온기를 정성껏 복원하면서도, 감독 특유의 심술을 곳곳에 심어둔다. 안심할 만하면 다른 인물이 허무하게 공룡들의 밥이 되고, 총을 들고 용맹하게 나선 이웃은 근사한 활약 대신 익룡에게 그대로 뜯겨나가기 일쑤다. 향수 어린 장르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는 클리셰를 착실히 따라가다 기어이 한 번씩 뒤통수를 치는 구조다.

이 심술은 관객의 반응을 정확히 둘로 가른다. 누군가는 예측 불허의 전개에 낄낄대고, 누군가는 몰입이 깨진다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같은 장면을 두고 정반대의 반응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가 얼마나 태연하게 장르의 규칙을 비틀고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공룡이 난입하는 소동 한복판에는 ‘가족’이 있다. 해고 사실을 숨기던 가장 그렉도, 꿈을 좇던 엄마 드니스도, 각자의 사춘기를 지나던 아이들도 공룡 앞에서는 체면 차릴 겨를이 없다. 다만 영화는 가족의 위기를 거창한 화해의 순간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냥,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매달리다 보니 어느새 가까워졌다는 정도의 담백한 온도를 유지한다. 그 편이 오히려 이 유쾌한 재난극에는 더 잘 어울려 보인다.

감독의 이력을 떠올리면 이 조합은 꽤 흥미롭다. 영화 ‘팔로우’와 ‘언더 더 실버레이크’에서 그는 평범한 미국 교외의 골목을 슬그머니 기이하고 불길한 공간으로 뒤바꾸는 감각을 벼려왔다. 이번엔 그 감각을 J.J. 에이브럼스라는 대형 제작자와 함께 훨씬 큰 스케일로, 그것도 가족 모험 장르에 풀어놓았다. 여러 차례 개봉이 밀리며 오랫동안 창고에 머물렀던 이 영화가, 정작 극 중에서는 제 시간대를 잃고 표류하는 마을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도 웃어넘기기 좋은 우연이다.

그리고 가족을 구하는 건 거창한 영웅적 결단이 아니라는 점도 재미있다. 어이없을 만큼 소박한 이 결말이야말로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이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통째로 뒤집혀도, 결국 우리를 지켜주는 건 거대한 영웅담이 아니라 곁에 있는 존재라는 것. 뒷마당에 공룡이 나타나는 상상은 허황되지만, 그 상상 속에서도 가족이 함께 도망친다는 사실만큼은 이상하게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