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운동의 개인됨

입력 : 2026-09-09 17: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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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인권위원

사회운동 조직은 전반적으로 사람을 잘 못 돌본다. 여기에는 단서 조항이 있다. 운동 조직이 다른 곳보다 특별히 돌봄에 무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곳보다는 그런 곳들이 대체로 구성원들을 잘 돌보려 애쓴다. 중요한 것은 상대적인 기대치에 기댄 개인의 체감이다. 운동 조직이 안팎으로 외치는 가치들은 돌봄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걸 들은 사람들은 내가 저기서는 뭔가 그럴싸한 돌봄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 기대란 실로 원대한 것이어서, 그 높은 기대치에 비해 실제 돌봄의 크기는 자연히 미달될 수밖에 없다.

운동은 많은 사람들의 꿈을 먹고 산다. 거기에는 당대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아무쪼록 적은 것도 포함된다. 그런 난망한 기대가 나쁜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런 기대가 있어야 운동의 이름에 값한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든 변했으면 좋겠는 기대야말로 운동의 핵심이다. 문제는 그런 막대하고 원대한 기대를 품고 사는 요령이다. 그 기대는 보통 품이 많이 들고, 그런 품 많은 기대를 품고 사는 방법은 사실 운동가도 운동가 아닌 사람들도 잘 모른다. 세상에 없던 꿈을 꾸면 세상에 없던 품이 든다. 그 일은 운동 조직 내 돌봄망의 외연을 매번 뛰어넘고, 많은 경우 눈치껏 알아서 할 문제로 내 앞에 놓인다.

사람은 오래 속는 것을 싫어하고, 꿈을 꾸었거나 꿈을 꾸게 만들었으면 그에 합당한 책임이 필요하다. 그럴 때는 차라리 우리가 가진 것이 사실 이것뿐이고, 이것뿐인 여기서 함께 시작하자는 말이 위로가 될 수 있다. 어차피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관계와 결사와 돌봄이 필요하고, 동시에 거기에는 명백한 품과 비용이 든다. 전자의 필요만 얘기하는 것도 무책임하고, 후자의 비용만 얘기하는 것도 대책없는 일이다. 사람들에게 꿈을 꾸게 만드는 일이란 그만큼 무섭고 숭엄한 것이다.

무엇을 기대하지 않는 것보다 무언가 기대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하는 일은 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 거기에는 내 혼자된 삶에 대한 구체적인 기대도 포함된다. 비혼과 1인 가족 운동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 결정적일 때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고, 끝내는 혼자일 때가 많을 것이다. 그걸 거짓말하지 않는, 그걸 그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조직이 좋다. 사회 문제의 개인화를 피하기 위해 개인됨을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하다. 사회운동은 특히 개인의 막대한 역량이 필요하고, 실제로 혼자 지고 갈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런 곳일수록 이곳만큼은 다르겠지 하고 운동에 진입하는 사람들의 예정된 실망을 헤아리고, 그에 대해 투명한 논쟁과 언어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