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가에는 ‘어공’과 ‘늘공’이라는 말이 다시 등장한다. 선거와 함께 들어온 ‘어쩌다 공무원’이 핵심 자리를 맡고, 오랜 기간 전문성을 쌓아온 ‘늘 공무원’이 뒤로 밀리는 풍경을 두고 요즘에는 ‘관료 잔혹사’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어공이라서 문제도, 늘공이라서 해답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권한을 가진 자리에 그 권한을 감당할 전문성과 책임이 함께 있느냐는 것이다.
민선 9기 부산시가 출범했다. 수장이 바뀌면 사람과 정책의 우선순위도 달라진다. 다만 블록체인과 디지털금융처럼 기술과 금융, 규제와 산업이 얽힌 분야라면 인사의 기준은 더 엄격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어공’은 단순한 자문위원이 아니다. 시장과 가까이 호흡하며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주요 사업의 방향을 최고 의사결정권자에게 직접 설명하고 관철할 수 있는 정무형 책임자다. 그렇다면 이런 자리에 필요한 기준도 분명하다. 시장과의 인연이 아니라 산업에 대한 전문성, 중앙정부와의 협상력, 그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이다.
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의 성적표를 보면 그 필요성이 선명해진다. 2019년 특구 출범 당시에는 기업 유치와 창업 등 250개사에 이르는 효과가 기대됐다. 그러나 2025년 특구 입주기업은 17개사였다. 신규 실증사업은 2023년부터 3년 연속 없었고, 지금까지 부여된 규제특례 17건 가운데 법령 정비가 완료된 것은 4건이다. ‘블록체인 도시 부산’이라는 이름과 산업의 현실 사이에 간극이 생겼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 결과를 담당 공무원의 역량 부족으로 설명하는 것도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얼마 전 서울의 한 증권사 대표는 전국 여러 지자체와 블록체인 사업을 논의해 봤지만 부산만큼 담당 공무원들이 기술을 공부하고 기업과 함께 해법을 찾으려는 곳이 드물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람보다 특구가 가진 권한의 한계와, 그 한계를 돌파할 힘의 부족에 가깝다. ‘규제자유특구’라는 이름만 들으면 부산에서 필요한 규제를 자유롭게 풀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 부산시는 기업과 사업을 발굴하고 실증을 설계할 수 있지만, 실증특례는 중앙정부와 관계 부처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 더 큰 관문은 그다음이다. 실증에 성공해도 전국적인 사업으로 키우려면 해당 규제를 담당하는 중앙부처가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부산은 실험의 무대는 만들 수 있지만 제도의 문까지 혼자 열 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무형 책임자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산업을 이해하고, 현장 공무원이 축적한 경험을 존중하며, 부산에서 확인된 가능성을 들고 중앙정부를 설득해 규제 개선과 제도 변화까지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부산의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2024년 시작된 블록체인 특화 클러스터 사업은 최근 2년간 178억 원의 투자 유치와 123명의 신규 고용을 만들어냈다. 올해도 19개 기업을 대상으로 55억 원 규모의 지원이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실증과 규제 개선, 투자와 기업 정착을 하나의 선으로 잇는 힘이다. 스타트업 지원 정책도 같은 원칙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부산의 일부 지원사업은 부산에 본사를 둔 기업뿐 아니라 지사를 둔 기업에도 문을 열고 있다. 외부의 좋은 기업을 끌어들이려는 취지라면 지사 기업을 배제할 이유는 없다. 다만 공공 재원을 배분할 때 ‘부산 주소’만 확인해서는 안 된다.
부산에서 몇 명을 고용했는가. 지역 인재를 채용했는가. 연구개발과 매출이 실제 부산에서 일어나는가. 지원이 끝난 뒤에도 부산에 남아 투자와 고용을 이어가는가. ‘부산에 사무실이 있는 기업’과 ‘부산에서 성장하는 기업’은 같지 않다.
지원사업의 목적은 좋은 제안서를 고르는 데 있지 않다. 좋은 기업을 키우고, 그 기업이 부산에서 사람을 뽑고 성장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그래서 기업의 지원 횟수보다 부산에서 만든 고용과 투자, 매출과 잔류 성과를 더 무겁게 평가해야 한다.
새 시정의 성패는 몇 명의 기관장과 정책 책임자를 바꿨느냐로 평가되지 않을 것이다. 부산에서 몇 개의 좋은 기업이 태어나고, 투자받고, 사람을 뽑고, 결국 부산에 남았느냐. 그 숫자가 진짜 성적표다.
어공에게는 추진력이 필요하고, 늘공에게는 전문성과 행정의 연속성이 있다. 민간에는 시장을 읽고 빠르게 움직이는 실행력이 있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할 수 없다. 세 힘이 한 팀으로 움직일 때 ‘특구’라는 행정의 이름은 비로소 ‘산업’이 된다. 부산 블록체인의 다음 10년은 사람을 바꾸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부산에서 기업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끝내 남을 이유를 만드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