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왜 오디세이 거인은 실물이었을까?

입력 : 2026-09-16 18: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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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상 디지털콘텐츠 부장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CG 거부로 유명
인간은 아날로그적인 노력·소통에 반응
북페스티벌 붐, 깊은 앎에 대한 갈망
AI시대에도 인간적인 본능 이해 필요

영화 ‘오디세이’가 개봉 한 달여 만에 1000만 관객 몰이에 성공했다. 3시간 가까운 상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올해 최대 흥행 외화 자리를 꿰찼다. 리뷰와 평점 등을 살펴보면, 비평가는 물론 일반 관객들의 평가도 상당히 좋다. 장대한 서사도 흥미롭고, 압도적인 화면과 사운드도 몰입감을 높였다는 평가가 많다. 비전문가인 일반인들은 이런 복잡한 분석을 묶어서 축약해 “재밌다”라고 표현한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에겐 독특한 ‘장인정신’이 있다. 사실 집착에 가깝다. 할리우드에선 일상이 된 ‘CG’를 거부하고, 디지털 기술을 최대한 배제해서 촬영한다. 오디세이는 아이맥스용 필름으로 100% 촬영했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도 CG가 아니라 18m 크기의 실제 움직이는 구조물이었다. 거인족들도 장신 배우들을 고용해 원근법으로 촬영했다. CG로 하면 간단한 일이지만, 디지털의 도움을 최소화하며 번거로운 옛날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CG가 아무리 정교해도 실물보다 못하고, 실물이 없으면 배우 연기도 어색하다는 게 놀런 감독의 생각이다. 그가 거장 반열에 오르게 된 것에 이런 고집스러운 촬영 스타일도 기여했을 것이다. 설령 CG로 실제와 똑같은 결과물을 만든다 해도, 사람들은 실물 촬영을 더 높게 평가할 것이다.

2009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소속 울리히 커크 연구진은 fMRI(자기공명영상)으로 재밌는 실험을 했다. 참여자에게 똑같은 추상화를 주면서, 사람 또는 컴퓨터의 작품이라고 라벨링을 했다. 이때 참여자들의 뇌 반응을 살폈다. 예상대로 사람의 작품이라고 할 때 즐거움과 보상을 처리하는 뇌 영역이 더 활성화됐다. 인간은 예술을 결과만 보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예술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투입된 아날로그적인 노력에도 반응한다.

SNS와 쇼츠 영상이 대세인 요즘 세상에서 북콘서트와 북페스티벌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책을 읽고,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는 거다. 어느 지역 독서대전에 7만 명이 왔다 갔다는 뉴스도 있다. 지난 12일과 13일에 부산 백양근린공원 일원에서 열린 ‘2026년 낙동독서대전’도 성황리에 끝났다. 북페스티벌의 흥행은 수년 전부터 꾸준히 관찰돼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날 것 같지도 않다.

책을 통한 소통이 늘어 가는 현상은 아날로그 방식의 지식 교류를 원하는 이가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핸드폰만 켜면 쇼츠 영상으로 짧은 뉴스를 접할 수 있다. AI에 물어보면 뭐든 상세하게 답이 나온다. 디지털을 통하면 빠르게 큰 노력 없이 지식 습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앎의 재미는 없다. 공감각적인 동물인 인간은 종이의 질감을 느끼고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를 하면서 지식을 쌓는 재미를 얻을 수 있다. 아날로그 방식의 독서를 하면 전두엽과 측두엽이 더 강하게 상호작용해 ‘깊은 읽기’에 유리하고, 디지털 매체는 ‘얕은 읽기’에 적합한 뇌 회로가 작동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시간을 들여 가며 책장을 넘기면 더 깊게 생각할 수 있고, 지식 습득을 넘어선 앎의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경험을 공유하면서 즐거움을 더 키우는 자리가 북콘서트나 북페스티벌이라는 거다.

디지털 세상은 오래전 이야기다. 이제 인류는 AI시대 한복판으로 향하고 있다. 어떻게 디지털과 AI를 거부하겠는가. AI는 업무의 효율성 증가, 생산성 향상 등에 매우 효과적이다. 사적인 일들,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점심 메뉴를 정할 때도 AI를 쓰면 시간을 절약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효율적으로 일하고, 더 빠듯하게 사는 게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사피엔스는 초원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뤄 생활하는 것에 적합하도록 진화했다. 디지털이 없는 느린 일상에서 타인과 직접 소통하는 삶에 기반해서 만들어진 존재들이다. 인류가 디지털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AI와 대화하며 열심히 살아 생산성을 극대화해도, 우리에겐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아날로그적인 즐거움과 만족감을 찾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커피숍에 줄을 서서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게 흔한 일이 됐다. 어쩌다 작은 커피숍에 들어가 주인장과 짧은 대화 속에서 추천 받은 음료를 마시면, 왠지 맛이 더 만족스럽게 느껴지곤 했다. 짧은 아날로그적인 소통이 맛을 더 했을 것이다. 디지털과 AI시대에 더 잘 살려면, 우리의 아날로그적인 본질을 더 잘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