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타 치하루, 일기, 2025, 혼합매체, ⓒ Chiharu Shiota / VG Bild-Kunst, Bonn-SACK, Seoul, 2026.
붉은 실이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시오타 치하루(1972년~)는 일본에서 태어나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해 오고 있다. 이 작품은 그가 2025년 뉴욕 재팬 소사이어티의 ‘두 개의 고향’에서 선보인 ‘일기’라는 대형 설치 작품이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뻗은 수천 가닥의 실은 혈관 같기도 하고 신경망 같기도 하다. 그 사이에 책상과 의자, 편지와 일기, 신발과 열쇠, 여행 가방이 매달려 있다.
실 속의 일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병사들의 기록과 전후 독일 민간인들의 일기다. 데리다의 ‘흔적’과 ‘대리보충’을 떠올리게 하듯, 이 사물들은 부재한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동시에 그의 부재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시오타에게 실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다. 하나의 실은 약하지만 수많은 실이 얽히면 거대한 공간이 된다. 기억도 그렇다. 다른 기억과 만나고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면서 개인의 기억은 공동의 기억이 된다.
시오타의 기억 작업은 이제 개인의 부재를 넘어 전쟁의 기억으로 나아간다. 붉은 실은 서로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의 시간을 한 공간에 엮어 놓는다. 여기서 전쟁은 국가 간의 승패가 아니라, 어느 병사의 두려움과 가족의 기다림, 살아남은 사람의 하루로 돌아온다. 일본과 독일이라는 작가의 ‘두 고향’도 이 기억 속에서 만난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라고 말했다. 대량 학살 이후에도 예술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름다움을 생산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훗날 〈부정변증법〉에서 지속되는 고통에는 표현될 권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대량 학살 이후에 예술이 타인의 고통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감동으로 소비하고, 쉽게 화해시킬 수는 없다는 데 있었다.
여기서 예술의 윤리가 시작된다. 시오타의 붉은 실은 상처를 봉합하지 않고, 사라진 사람의 흔적을 현재에 붙들어 놓는다. 관객은 그 실 사이를 걸으며 타인의 기억을 몸으로 통과한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의 ‘손안의 열쇠’ 이후, 그가 21세기 설치미술의 중요한 작가로 자리 잡은 까닭도 여기 있다. 기억과 부재라는 보이지 않는 것을 실과 사물, 공간이라는 물질적 경험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그는 관객을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책임진다는 것이다. 예술이 세계의 전쟁을 멈출 수는 없다. 폭격을 막을 수도 없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도 없다. 시오타의 붉은 실은 히로시마와 아우슈비츠, 오늘날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와 이란을 하나의 기억 공간 안에 놓는다. 사람은 죽음으로 한 번 죽지만, 망각 속에서 다시 한번 죽는다. 시오타의 붉은 실은 그 두 번째 죽음을 막기 위해 우리 앞에 놓인 기억의 선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