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비밀 보호 중요한 성폭력상담소를 다중복합시설에?

입력 : 2026-09-16 18:17:53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울산 동구, 재정 탓에 이전 추진
타 기관에 우선 순위 밀리면서
신축 못 가고 기존 복합시설로

동구 가정성폭력 상담소. 동구 가정성폭력 상담소.

울산 동구가 예산 상의 문제를 이유로 가정·성폭력통합상담소를 동구 소유 유휴 공공시설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후보 대상지가 주민 이용이 잦은 개방형 공간이어서 피해자 비밀 보장 원칙이 무력화될 우려가 나온다.

16일 동구에 따르면 대송시장 인근 민간 임대 건물에 입주해 있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 학교 밖 청소년지원센터, 동구가정·성폭력통합상담소 등 청소년 시설의 분리 이전을 추진 중이다.

당초 동구는 방어동 일원에 연면적 766㎡ 규모의 복합시설을 신축해 이들 3개 기관을 한곳에 모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설계 변경과 연약 지반 보강 등으로 총사업비가 53억 원에서 86억 원까지 치솟자, 예산 상의 문제로 시설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이 과정에서 신축 건물의 층수가 낮아지며 가정·성폭력상담소 입주 계획이 백지화됐고, 상담소는 새로운 둥지를 찾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에 동구는 상담소를 옮길 공간을 찾기 위해 구 소유 유휴 공공시설을 포함해 여러 후보지를 검토하고 있다. 체육시설을 제외하고 현재 활용 가능한 공간으로는 명덕복합문화광장, 꽃바위문화센터, 동구청년센터 등이 꼽힌다. 문제는 이곳들이 청년 정책 거점이거나 도시재생 사업을 통한 마을 활성화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등 주민 이용이 잦은 개방형 시설이라는 점이다.

가정·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 신원 노출 방지와 심리적 안정을 위한 ‘비밀 보장’과 ‘독립성’이 핵심이다. 전문가들은 유동인구가 많고 주민 접근성이 높은 다중 복합시설에 상담소가 들어설 경우, 피해자가 신원 노출을 우려해 방문 자체를 기피하거나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주은수 울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정·성폭력 상담 시설은 방문자가 드나드는 사실만으로도 낙인감을 느낄 수 있어 방문 목적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도록 운영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유휴 시설을 활용하더라도 간판 노출을 최소화하고 독립된 동선을 확보하는 등 피해자가 상담을 기피하지 않도록 세밀한 공간 구성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구가 구 소유 시설을 우선 검토하는 데는 악화된 재정 여건이 작용했다. 동구의 주요 세입 재원은 2023년 1842억 원에서 올해 본예산 기준 1473억 원으로 369억 원 감소했다. 올해는 직원 인건비조차 본예산에 전액 편성하지 못하고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확보했다.

동구 관계자는 “열악한 재정 여건상 임대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동구 소유의 여러 유휴 공간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면서 “현재 부서 간 협의 중인 사안으로 최종 확정된 곳은 없다. 상담소의 특수성과 이용자 비밀보장 문제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상민 기자 sm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