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 15주년을 맞아 박완서 소설 속 한글 단어를 가려 뽑은 책이 출간됐다. 사진은 2007년 당시 박완서 작가 모습. 부산일보DB
타계 15주년을 맞아 박완서 소설 속 한글 단어를 가려 뽑은 책이 출간됐다. 사진은 2010년 등단 40주년을 맞았던 박완서 작가 모습. 연합뉴스
박완서 작가 타계 후 맏딸 호원숙 작가는 2015년 '박완서·호원숙 산문집'을 출간했다. 사진은 당시 호원숙 작가 모습. 연합뉴스
“읽다 보면 한글이 맛있어서 미치겠다. 이 낱말들 때문에 박완서 선생님 책에 그토록 생기가 흐르고 윤이 났던 거구나. 어느 하나 식상한 표현이 없는데 그렇다고 으스대지도 않는 말들이다. 말을 위한 말이 아니라 인생을 징하게 겪다가 따라온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는 맛을 아는 자는 이런 단어 선택을 한다. 선생님은 한국어를 최대한 누리신 듯하다.”
인기 작가 이슬아는 한국 문학의 거목 박완서 작가의 문학 속 어휘에 대해 이렇게 감탄한다. 독특한 표현과 단어 선택으로 각광받는 젊은 세대임에도 거장 박완서의 우리말 단어에 놀랐다는 솔직한 고백을 했다. 타계한 지 벌써 15년이 지났지만, 박완서가 왜 여전히 작가들의 작가로 꼽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 같은 박완서의 문학 속 빛나는 단어들을 모은 책이 출간됐다. 박완서 작가의 맏딸 호원숙 작가가 어머니의 문학 작품 속에서 직접 가려뽑은 120개의 한글 단어는 보물처럼 느껴진다.
1970년 <나목>으로 등단한 이래 40여 년간 수많은 작품을 발표해온 박완서 작가는 생생한 생활어로 인간의 위선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사람과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긴 문장은 한국 문학의 독보적인 지평을 열어왔다. 시대와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작품은 삶을 꿰뚫어보는 정확한 시선과 생생한 문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일상의 풍경과 찰나의 감정을 과장 없이 담아내는 말, 삶을 쉽게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맨얼굴을 정직하고 아름답게 그려내는 한글 표현이 그의 작품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맏딸 호원숙 작가는 “어머니의 책상 가까이에는 사전이 늘 있었다. 두 권으로 된 두껍고 무거운 사전이었는데 나중에는 나달나달해지고 제본이 여러 조각으로 풀어졌다. 어머니의 글을 읽으면 정확한 뜻에 놀라고 사전적인 의미 이상의 깊은 뜻을 발견한다. 글을 소리 내어 읽을 때 더욱 시적인 울림을 준다”라고 말한다. 호 작가는 책에 담긴 낱말이 요즘 젊은 세대에겐 평소 사용하지 않는 낯선 느낌일 수도 있지만, 어머니의 문학 안에서 빛나는 보석을 찾아내는 기쁨이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박완서의 낱말들>은 읽는 사람에 따라 정말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다. 몰랐던 한글 단어를 알려주는 사전이 될 수도 있고, 색다른 문장을 만들 수 있는 비밀 병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평범했던 장면에 꼭 맞는 표정을, 미묘한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여주는 식이다.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해 답답해하던 독자들에게 시원한 언어적 해갈을 선물한다.
일상 구석구석에서 길어 올린 감칠맛 나는 말맛은 박완서의 문장에서 제대로 뛰어 논다. 책에는 단어의 뜻과 함께 실제 박완서 문학 작품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활용 문장을 몇 개씩 보여준다. 자연스럽게 독자도 방금 책에서 배운 단어를 넣은 문장을 만들게 된다. 책 옆에 펜과 공책을 두고, 단어마다 나만의 문장을 만들며 놀았다. 그렇게 책을 읽다보니 박완서 작가와 단어 놀이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훈향:훈훈한 향기/그에겐 늘 훈향이 났다’ ‘괄다:불기운이 세다/괄게 타는 불길을 보며 예전 추억이 떠올랐다’ ‘망막하다:넓고 멀다/기차에서 내려 처음 만난 서울은 망막하게 보였다’ ‘허위허위:힘에 겨워 힘들어하는 모양/한여름 아스팔트는 뜨거웠고 허위허위 숨을 몰아쉬며 걸었다’ ‘더펄더펄:침착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모양/어릴 때부터 엄마는 더펄더펄 선머슴처럼 행동하지 말고 숙녀처럼 매너를 갖추어야 한다고 잔소리했다’.
박완서의 낱말을 직접 활용해 본 사례들이다. ‘꼬약꼬약’ ‘요요하다’ ‘겨끔내기’ ‘엉구다’ ‘기갈’ ‘노느매기’ ‘깔축없이’ ‘소증’ ‘은성하다’ ‘보깨다’ ‘징건하다’ ‘얕얕하다’ ‘괴다’ ‘담독하다’ ‘희떱다’ ‘뚱기다’ ‘야젓잖다’ ‘구메구메’ ‘츱츱하다’. 사용할 기회가 많을 것 같은 단어를 먼저 뽑았다. 당장 기사에도 이 단어를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 마음에 드는 박완서의 단어를 뽑고 이를 활용해 문장을 만들어 보자. 글 쓰는 실력이 쑥 늘어날 것이다. 박완서 지음/호원숙 엮음/웅진지식하우스/264쪽/1만 9800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