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우먼파워 인 부산!

입력 : 2026-09-21 17: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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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희 전 (사)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 상임대표

전재수 부산시장이 ‘시민과 함께 만드는 해양수도 부산’이라는 이름으로 취임 후 첫 타운홀 미팅을 열었다. 그는 해수부, 해운 대기업 이전, 북극항로 개발로 이제는 해양수도 부산의 콘텐츠를 채워가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해양수도 부산’의 비전은 북극항로 개척이나 항만사업이라는 중심을 논외로 하더라도 훨씬 더 많은 확장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각종 기관 유치와 인프라 구축이 도시 비전의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과정이라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가는 콘텐츠의 개발은 보다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사실 부산의 콘텐츠는 충분히 존재한다. 아무도 그것을 콘텐츠로 인식하지 않을 뿐이다. 실제로 부산을 가장 잘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로 자갈치 아지매를 생각해 보자. 자갈치 시장은 6·25전쟁 이후 격동기를 살아낸 여성들의 고난과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이다. 일제강점기 방직공장과 고무공장, 산업화 시기 신발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공장 안에서 부산의 산업을 떠받쳤다면, 자갈치 아지매는 바다를 끼고 자리한 해양도시에서 그 경제를 순환시킨 또다른 주역이었다. 그러고 보면 근대화 이후의 부산은 여성의 사회참여가 활발한 역동적인 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근대화 이후 부산은

대표적인 여성 사회참여의 도시

해양경제 순환의 주역

자갈치 아지매는 상징적 콘텐츠

부산의 새 여성가족플라자

일하는 여성 위한 비전 채우기를

그러나 이는 도시의 공식 역사로 충분히 승인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제주도의 경우 해녀는 그 지역의 가장 강력한 콘텐츠 중 하나다. 제주 해녀에 대한 인류학적, 사회학적 연구가 국내외에서 숱하게 이루어졌고 국가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국가 지자체 차원의 대규모 학술 아카이빙 지원이 있었다. 그러나 자갈치 아지매는 억척스러운 여성 이미지로만 소비되거나 라디오 프로그램의 제목으로만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을 뿐 이들 여성 노동자의 역사에 대한 연구나 스토리텔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영도의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깡깡이 아지매와 같은 여성 노동자의 삶이 복원되고 재조명받은 정도다.

그나마 이런 여성 노동의 역사가 제도로나마 흔적을 남긴 곳이 있다면, 현재 대연동 청사에 자리잡은 부산여성회관일 것이다. 1966년 개관한 부산여성회관은 전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여성회관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의 여성들에게 양재, 편물, 이미용의 기술기능교육을 제공했다. 부산여성회관의 개관 배경이 명확하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일하는 주체로서 여성들을 상정했던 공간이 전국에서 최초로 열린 것은 당시 부산의 환경을 생각하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여성회관은 1960년대 이래로 콘텐츠의 개발이 부족하다고 지적되고 있는 실정이다. 양재, 꽃꽂이 등과 같은 직업훈련과목은 오늘날 부산 여성들의 다양한 활동 반경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고 그마저도 일부 여성인력개발센터와 다를 바 없이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부산에는 여성회관과 여성문화회관이 있지만 생각보다 이들 공간은 시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부산여성회관이 대규모 투자 계획을 통해 부산여성가족플라자로 거듭나기로 한 배경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물론 이마저도 가족 중심 공간으로 편성함으로써 애초 1960년대 일하는 여성을 위한 공간으로서 건립된 여성회관의 취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점은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얼마 전 전재수 시장이 여성가족플라자 건립과 관련하여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해당 사업계획이 추상적이며, 기존 시설과의 차별성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질타했던 것도 결국 이 공간이 무엇을 위한 곳인지 스스로도 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렇다면 차별성은 시설의 기능이 아니라 정체성에서 나와야 한다. 기존 여성인력개발센터가 기술과 취업을 가르치는 곳이라면, 새 플라자는 부산이라는 도시가 일하는 여성의 역사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것이 가족 중심 편성으로 흐려진 지금의 설계와, 자갈치 아지매의 후예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원래의 정체성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실제로 청년인구가 빠져나가는 현상은 경북 경남 다음으로 부산이 가장 많고, 그중에서도 여성 청년인구의 순이동률이 남성보다 더 높다. 소속감을 주지 못하는 도시에서 여성은, 특히 젊은 여성은 머무를 이유를 찾지 못한다. 해양도시의 비전을 부산 여성의 우먼 파워에서 찾고 이를 확장시키는 일, 부산은 여성 노동자의 피땀으로 경제를 부흥시키고 일군 도시임을 도시의 공식적인 역사로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가는 일은 미래세대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새로운 여성가족플라자가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비전을 안고 그 기능을 하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는 자갈치 시장에서, 신발공장에서 부산의 경제를 일으켜 세운 여성 노동자의 자식이자 후손들로서 해양수도 부산의 비전에 우먼파워를 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