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자료 사진. 대법원 제공
최근 대법원이 ‘쉽게 쓴 판결’을 처음으로 활용한 가운데 지방법원도 ‘이지 리드’(Easy-read, 읽기 쉬운) 판결을 선고하고 나서는 등 문턱을 낮추려는 법원의 시도가 잇따른다.
경남 창원지방법원 형사6-3부(부장판사 최선재)는 최근 특수존속상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60대 A 씨에게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을 명령했다. A 씨는 망치로 부모를 폭행해 다치게 하고 재물을 망가뜨린 혐의를 받는다. 1심 재판부는 A 씨에게 징역 1년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A 씨가 지능지수 42 수준이라는 사실을 고려해 쉬운 일상어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잘못을 해서 4개월 동안 감옥에 가야 하지만, 지금 당장 감옥에 갈 정도는 아니므로 앞으로 1년 동안 어떻게 지내는지 지켜보겠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집행유예는 “판결이 확정된 날부터 1년 동안 새로운 죄를 짓지 않으면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풀어 썼다.
양형 이유도 “법원은 A 씨가 스스로 잘못한 것을 느끼고, 앞으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적정한 형을 정하여 선고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고 전달했다. 판결문에 이해를 돕는 삽화도 활용했다.
쉽게 쓴 판결은 2022년 서울행정법원 강우찬 부장판사가 처음 사용했다. 다만 따로 근거 규정이 없어서 보편적으로 활용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올해 1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사법 접근 및 사법 지원에 관한 예규’로 이해하기 쉬운 판결서를 제공할 수 있다는 규정이 시행되면서 활용 근거가 마련됐다.
이를 계기로 대법원은 지난 3일 영화 상영관이 시각·청각 장애인에게 화면 해설·자막 등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하는 금지된 차별행위라는 취지로 판단하면서 쉽게 쓴 판결을 선고했다. 예규에 따라 선고한 대법원의 첫 쉽게 쓴 판결이다.
대법원이 앞장서자 지방법원도 쉽게 쓴 판결 확산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금까지 한 차례도 활용한 사례가 없었던 창원지방법원은 이달에만 두 차례 쉽게 쓴 판결을 선고했다. 지난 17일 가사1부 서아람 부장판사가 한국인 남편과 베트남인 아내의 이혼 소송 선고를 쉽게 쓴(부산일보 9월 21일 자 8면 보도) 판결이 첫 사례다.
창원지방법원 공보관인 이병탁 판사는 “아직은 사례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고 참고할 자료도 많지 않아 실제 사건에 적용하기가 쉽지만은 않다”면서도 “문해에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 약자가 쉽게 쓴 판결로 내용과 의미를 더 정확히 이해한다면 사법절차에서 권리를 충실히 행사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도 법원 문턱을 낮추고자 법제화에 나섰다. 박용갑(더불어민주당·대전 중구) 국회의원은 지난 14일 법원조직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정에서 이해하기 쉬운 용어를 사용하도록 노력할 의무와 장애인이 편의 제공을 요구할 경우 이해하기 쉬운 자료 등 수단을 제공하도록 명시하는 법안이다.
최환석 기자 ch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