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부산비엔날레를 찾았다. 8월 말 개막한 비엔날레는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영도의 옛 부산남고, 스페이스 원지에서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22개국 46개 팀이 참여해 11월 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의 주제는 ‘불협하는 합창’(Dissident Chorus)이다. 주제에 걸맞게 각각의 작품은 시공간을 압도하는 여러 형태의 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때로는 작품에 깊이 몰입하도록, 때로는 시각적 대상이 낯설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전시를 둘러보는 내내 끊임없이 변동하는 소리의 진폭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소리는 작품과 관객 사이에서 일정한 긴장 관계를 형성하며, 이번 전시가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거듭 되묻도록 했다.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운 채 말이다.
지난달 개막 부산비엔날레 관람
다양한 소리 활용한 작품 경험
여럿이 함께 만들어 내는 소리
공고한 체제 대항하고 균열 가해
부마민주항쟁 47주년 앞두고
연대와 저항의 힘 떠올리게 해
불협하는 합창. 선명한 역설(paradox)의 표현이다. 불협과 합창은 쉽사리 결합할 수 없는 모순된 말이다. 이 역설의 언어 속에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첫째, 합창은 조화로워야만 한다는 우리의 관념에 가하는 균열이다. 여기서 조화는 하모니(harmony)의 의미에 가까울 텐데, 서로 다른 소리가 아름답게 한데 어우러짐을 뜻한다. 그렇다면, 과연 불협하는 합창을 진정한 합창이라 일컬을 수 있을까? 이 물음은 조화로서의 아름다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어우러진다는 것은 어쩌면 전체를 위해 부분을 희생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부분들은 각각의 개성을 일정하게 깎아내야만 한다. 이는 화합된 전체가 그것을 이루는 개개의 합보다 크다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비엔날레의 작품 몇몇은 자신의 개성을 포기한 채 전체에 순치되기보다 고유의 소리를 지켜내기를 택한 존재들을 비춘다. 십여 년에 걸쳐 탈북민 공연단의 모습을 기록한 이동근 작가의 ‘아리랑 예술단’과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내몰렸던 고려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소리를 포착한 전소정 작가의 ‘구미호하기’가 대표적이다. 탈북민과 고려인 모두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의 성격을 지닌다. 경계 위를 늘 위태하게 걸어가는 그들이 지켜내는 것은 다름 아닌 소리다. 호흡과 함께 만들어지는 인간의 소리는 가리거나 숨길 수 없는 오롯한 내면적 힘이라는 사실을 이들 작품은 뚜렷이 보여준다.
한편,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주제가 환기하는 또 다른 의미는 여럿이 함께 만들어 내는 소리가 공고한 체제에 가하는 균열이다. Dissident Chorus를 직역한다면 ‘반체제적 합창’이라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쌓여 울려 퍼지는 거대한 소리는 너무도 공고하여 무너지지 않을 듯한 것들에 대항하는 힘이 된다. 류성실 작가의 ‘만 가지의 꿈’은 합창이 지닌 대항적 성격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낸다. 작가는 공사장의 철제 리프트 위에 똑같은 교복을 입은 12구의 마네킹과 세 곡의 합창곡을 통해 한국사회가 수십 년에 걸쳐 쌓아 왔던 원대한 성장의 꿈을 통렬하게 비웃는다.
해방 후 한국 사회가 짊어져야 했던 만 가지나 되는 꿈은 과연 무엇인가. “지구촌 시민의 꿈, 전쟁 끝나는 꿈, 평화통일의 꿈, 남남북녀의 꿈, 출산율 회복의 꿈, 국토개발의 꿈, 경제 성장의 꿈…” 작가는 끊임없는 꿈의 연쇄가 우리를 쉴 새 없이 달리도록 만들었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꿈으로 누리는 만 가지 꿈”이라는 가사를 통해 꿈의 허위성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만 가지의 꿈은 결코 실현되거나 완성되지 못한 채 꿈으로만 존재한다. 꿈은 가닿을 수 없어야만 한다. 꿈이 성취되는 순간, 꿈을 향해 달리도록 만든 동력은 일순간에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경쾌한 합창 소리를 통해 강제된 꿈의 연쇄를 끊어내려는 시도를 펼쳐 보인다. 이는 부산비엔날레에서 울려 퍼지는 모든 소리‘들’의 공통된 목적이자 효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산현대미술관 복도 한가운데 ‘민중가요 저장소’가 배치되어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역사의 크고 작은 고비마다 거리로 뛰쳐나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드높이며 불협하는 합창을 불렀던 존재가 바로 민중인 까닭이다. 우리 현대사는 모두에게 똑같은 교복을 입힐 수는 있을지언정, 내면으로부터 솟아나는 서로 다른 소리를 단일하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1979년 10월 16일 아침, 부산대학교에 모인 수백수천의 청년들은 불의한 독재에 항거하고자 거리로 나섰다. 그들은 ‘통일의 노래’와 ‘애국가’ ‘선구자’ 등을 힘차게 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거대한 함성과 구호, 노랫소리가 도심을 가득 메웠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소리는 순식간에 증폭되었으며, 부산 전역을 넘어 마산으로까지 퍼져 나갔다. 공기를 타고 흐르는 울림은 강력했고, 뜨거웠으며, 거침없었다. 부마민주항쟁 47주년을 앞둔 지금, 부산비엔날레를 통해 불협하는 합창이 이루는 연대와 저항의 힘을 다시금 곱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