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커피 생두가 부산을 지나 수도권으로 올라갑니다. 부산항이 있는데 왜 부산은 커피가 머무르고 거래되는 산업의 중심지가 되지 못할까 생각했죠.”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에 본사를 둔 GVCC(Global Value Chain Coffee Center) 임수정 대표가 부산에서 커피 사업을 시작한 이유다. GVCC는 세계 산지에서 생두를 발굴해 국내외 로스터리와 카페 등에 연결하고, 국제물류와 통관, OEM·ODM 제조와 유통까지 이어주는 B2B 커피 밸류체인 플랫폼이다. 직접 카페나 커피 브랜드를 운영하기보다 커피 생산자와 이를 필요로 하는 업체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임 대표의 첫 전공은 커피가 아닌 음악이었다. 유럽에서 22년간 음악 활동을 하며 커피를 즐겼다. 커피가 일이 된 것은 귀국 후 과테말라 명예영사인 부친을 보좌하면서부터다. 과테말라 농장주와 생산자들을 만나고 직접 산지를 찾으면서 커피의 생산 과정을 접했다. 생두를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감별 관련 자격도 취득했다.
과테말라에서 시작된 인연은 다른 중남미 국가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생산지로 넓어졌다. 생산국 관계자와 농장주들과 교류하면서 산지에서 생두 샘플도 들어왔다. 현재 GVCC는 12개국에서 확보한 200여 종의 생두를 대상으로 샘플링과 품질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임 대표는 생산자와 국내 커피업체를 연결하는 사업에 눈을 돌렸다. 산지에는 다양한 생두와 판로를 찾는 생산자가 있는 반면 국내 로스터리와 카페는 안정적인 생두 공급처와 새로운 산지를 찾고 있었다. 양쪽을 연결하고 여기에 물류와 제조까지 붙이면 하나의 사업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업의 거점으로는 고향 부산을 택했다. 부산항을 활용해 생두의 수입부터 가공·유통까지 부산에서 연계하고, 나아가 일본 등 다른 소비시장으로 다시 내보낼 수 있다고 봤다.
임 대표는 “부산에는 유명한 카페와 로스터들이 많지만 생두를 중심으로 한 산업 구조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며 “부산항으로 들어온 생두가 수도권으로 올라가 가공되는 동안 부가가치도 함께 이동한다. 부산이 카페가 많은 도시를 넘어 커피산업이 돌아가는 도시가 됐으면 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우간다 생두 수출기업과 공급 계약을 맺고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브라질·에티오피아 등 국내에서 많이 사용하는 산지의 가격 상승과 생산량 변화에 대응해 로스터리와 카페가 활용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일을 하다 보니 아버지가 걸어온 길과 닮은 점도 발견했다. 부친은 오랫동안 무계목강관(용접 이음매가 없는 특수 배관 재료)을 수입해 국내에 유통하고 다시 해외시장으로 연결하는 무역업을 해왔다. 음악을 택해 전혀 다른 길을 걸었던 딸이 수십 년 뒤 품목만 커피로 바꿔 비슷한 일을 하게 된 셈이다.
임 대표는 “철강과 커피라 전혀 다른 일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해외에서 좋은 제품을 찾아 국내에 소개하고 다시 다른 시장과 연결한다는 구조는 비슷하다”고 말했다.
음악을 했던 경험도 사업을 바라보는 방식에 남아 있다. 임 대표는 “음악도 자기 소리만 크게 내면 화음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서 각자 조금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며 “커피도 생산자부터 로스터와 카페까지 각자가 연결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