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컷. (주)NEW 제공
누군가의 삶을 카메라에 담는 일은 정당한가. 찍는 사람은 이해하고 싶어서라고 말하지만, 찍히는 이에게 그 렌즈는 견디기 어려운 시선일 수 있다. 이 간극 앞에서 근본적인 질문이 따라온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는 일이 가능한가. ‘가능한 사랑’은 바로 이 질문 위에 서 있는 영화다. 이창동 감독이 ‘버닝’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영화는 다큐 감독 ‘예지’(조여정)가 해고 노동자 부부 ‘미옥’(전도연)과 ‘호석’(설경구)을 카메라에 담으려 만나면서 시작된다. 여기에 예지의 남편 ‘상우’(조인성)가 더해지면서, 서로 다른 계급에 선 두 부부의 삶이 한 화면 안에서 얽힌다.
이 만남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현실을 대하는 두 방식의 충돌이다. 미옥과 호석은 해고 이후의 고통을 지워 내려 하고, 예지는 그 지워진 자리를 기어코 끄집어내려 한다. 덮으려는 쪽과 열려는 쪽이 마주 섰으니, 저마다 무엇을 바라는지가 궁금해진다. 연대와 투쟁을 믿었던 호석은, 정작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등을 보이며 달아나던 동료들의 모습이 매 순간 떠올라 고통스럽다. 조금 푼수 같은 미옥은 남편의 상황을 이해하지만, 오늘 저녁 먹을 반찬이 더 걱정인 여자다. 값비싼 가방과 옷을 걸친 예지는 그들의 현실을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그 말은 몸에 붙지 않은 옷처럼 겉돈다.
예지는 노동자의 삶에 다가서려 애쓰고, 다큐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사연에 끌린다. 그러나 그 카메라가 누구의 욕망에서 나온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노동자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려는 선한 마음인지, 렌즈 뒤에 숨은 자기 갈증인지 영화는 판단을 미룬다. 이때 그들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이 상우다. 그는 그들과 어울리지만 한 발 떨어져 관찰하고 있고, 또 모든 조건을 마련하는 사람이다. 이 보이지 않는 힘이 영화에서 가장 기묘하고 섬뜩하다.
상우는 아내 예지가 노동자들과 처지가 다르면서도 공감하려 애쓰는 모습을 두고 메소드 연기라고 말한다. 이 말이 날카로운 것은 두 부부 사이의 거리가 마음가짐으로는 메워지지 않는다는 점을 짚기 때문이다. 이 거리를 가르는 기준은 선과 악이 아니라 서 있는 자리, 곧 계급이다. 그로 인해 호석과 미옥은 고통을 지워야 내일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위태로운 얼굴로, 예지와 상우는 그 고통을 소재로 삼을 여유가 있는 사람의 얼굴로 서로 다른 자리를 보여 준다. 그 거리는 미옥이 인천 월미도에서 올려다본 달과 예지가 미국 시카고에서 올려다본 달만큼이나 멀다. 같은 달이 떠 있어도, 같은 하늘일 수는 없다.
영화에서 달은 곧 시선이다. 달은 어디를 가도 따라오고, 때로는 나를 지켜 주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을 내려다본다. 지켜 준다는 느낌과 지켜본다는 사실은 한 끗 차이다. 달빛은 포근하지만 숨을 곳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달은 카메라와 닮았다. 달은 모두를 똑같이 비추지만, 그 시선 아래에서 편안한 사람과 들키는 사람은 다르다. 들키는 쪽은 가면을 쓸 수밖에 없다. 어렵게 예지의 카메라 앞에 앉은 호석이 속에 있는 말을 끄집어내며 울부짖는 장면이 처연한 것도 그래서다. 말을 쏟아내도 그 속내는 온전히 닿지 않는다.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삶을 그저 버티고 있을 뿐이다.
서로 다른 자리에 선 사람들 사이에 사랑은 가능할까.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이 한 화면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사랑처럼 보인다. 사랑이 상대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은 어디서부터 진실일까. 이해하려고 다가서는 일과 내 필요에 맞게 쓰는 일 사이의 경계는 끝내 선명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창동 감독은 이것을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낙관인지, 믿고 싶은 마음인지, 아니면 역설인지는 극장을 나서면서도 내내 곱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