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아이들에게 ‘공부의 기쁨’을 돌려주자

입력 : 2026-10-07 18: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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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동의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최근 우리 교육계는 거센 입시 개편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 있다. 문·이과 통합형 수능과 고교 내신 5등급제를 뼈대로 한 28학년도 대입 개편안이 현실로 다가온 데 이어, 국가교육위원회를 중심으로 중장기 대입 개편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서·논술형 평가, 수시와 정시의 통합 여부 등이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학부모와 교육 현장은 또다시 정책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밑바탕에는 분명한 문제의식이 있다. 지금의 정답 맞히기식 교육으로는 눈앞에 다가온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시의 틀과 평가 방식을 바꾼다고 해서 교실의 배움이 저절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제도를 바꾸기에 앞서 우리가 ‘배움’이라는 행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창의성 발현되는 궁극적 뿌리는 호기심

세상을 향한 의문, 알고 싶다는 갈망은

새로운 생각 싹 틔우는 유일한 자양분

스스로 묻고 오래 탐구하다가 마침내

새로운 앎 닿았을 때 번지는 환한 미소

배움을 대하는 우리 태도부터 바꿔야

‘논어’의 첫 문장은 잘 알려진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로 시작한다. 우리는 이를 흔히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해석하고 학습의 중요성을 떠올린다. 그러나 문장의 무게중심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핵심은 ‘학(學)’이나 ‘습(習)’ 그 자체보다 그 뒤에 이어지는 ‘열(說)’, 즉 마음에 차오르는 참된 ‘기쁨’과 ‘희열’에 닿아 있다. 배움의 끝에 있는 것은 기쁨과 희열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몰랐던 세계의 문이 열리고, 풀리지 않던 의문이 풀리며, 사물의 이치를 새롭게 깨닫는 순간이 있다. 그때 찾아오는 지적 희열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거나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의 만족과는 다르다. 어쩌면 공자의 제자들이 이 문장을 ‘논어’의 첫머리에 놓은 것도 배움의 본질이 지식의 축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앎에서 비롯되는 기쁨에 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육에서는 이 ‘기쁨’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21세기에는 생성형 AI가 인간이 오랜 시간 축적해야 할 지식을 몇 초 만에 찾아내고 정리한다. 단순한 지식 습득과 정형화된 문제 풀이에서 인간은 기계보다 효율적이기 어렵다. 그래서 교육은 최근 창의성을 강조한다.

창의성은 교과서에 밑줄을 긋거나 주입식 문제 풀이 요령을 익힌다고 해서 길러지는 능력이 아니다. 창의성이 발현되는 가장 궁극적인 뿌리는 바로 ‘호기심(Curiosity)’이다. 세상을 향해 품는 순수한 의문과 알고 싶다는 갈망이야말로 새로운 생각을 싹트게 하는 유일한 자양분이다. 호기심이라는 불꽃이 마음속에서 타오르지 않는다면 어떤 창의적 통찰도 일어날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 호기심으로 가득 찬 탐험가였다. 흙바닥에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만 보아도 쪼그리고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보았고, 부모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왜?”라는 질문을 쏟아냈다. 세상 모든 것이 경이로웠고,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달을 때마다 눈동자는 반짝였다. 아이들에게 배움은 고통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가장 신나는 놀이이자 마법 같은 모험이었다.

그러나 학교에 들어가면서 호기심은 조금씩 사라진다. 정해진 정답을 남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야 하고, 오답은 감점으로 이어진다. 질문도 교사의 의도에 맞게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틀리지 않기 위해 남의 생각을 따라 하고, 엉뚱한 상상을 스스로 검열한다. 배움은 어느새 탐구가 아니라 경쟁이 되고, 공부는 참아내야 하는 일이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개혁은 평가 방식만 바꾸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서술형 평가를 도입한다고 해서 갑자기 창의성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만으로 질문하는 학생이 길러지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평가 방식이 또 다른 ‘점수 따기 기술’로 변질된다면 교육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진정한 미래 교육은 아이들이 다시 질문하도록 만드는 교육이어야 한다. 질문은 정답을 몰라서 생기는 부족함이 아니라, 알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배움의 문이다. 좋은 교육은 그 문을 닫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엉뚱한 질문도 존중받고, 실패와 오답도 새로운 발견으로 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지는 교실이어야 한다. 교사는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에 머물지 않고 학생의 질문을 더 깊은 탐구로 이끄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입시제도를 바꾸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제도보다 먼저 바꾸어야 할 것은 배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인지도 모른다. 공부가 고통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설렘이 될 때, 아이들의 잠재력은 비로소 피어난다.

아이들의 눈동자에서 잃어버린 호기심을 되찾아주자. 스스로 묻고, 오래 탐구하고, 마침내 새로운 앎에 닿았을 때 번지는 그 환한 미소. 우리가 미래 교육에서 되돌려주어야 할 것은 어쩌면 바로 그 ‘배움의 기쁨’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