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일피일침] 연산동 고분군 사적 지정 10년이 눈앞인데…

입력 : 2026-10-15 18: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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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배산 북쪽 능선 따라 18기 봉분 배치
유산 가치 크지만, 시민 인식은 낮아
 
고대사·정체성 보여 주는 공공 자산
역사 교육, 정책으로 확장 안 돼 아쉬움
 
연제구뿐 아니라 시·교육청 관심을
보존 넘어, 프로그램 개발 나서야

천년 고도 경주에는 수많은 능(陵)이 자리하고 있다. 부산에도 규모는 작지만 이에 견줄 만한 역사 유적이 있다. 바로 연산동 고분군이다. 부산에서 유일하게 고총(高塚)이 밀집한 고분군으로 연제구 배산 북쪽 능선을 따라 18기의 봉분이 일렬로 배치돼 있다. 5~6세기 조성된 이곳은 신라와 가야의 무덤 축조 양상을 살필 수 있는 영남 고대사의 핵심 유적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6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내년이면 이로부터 꼭 10년이 된다. 사적 지정은 부산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시민들에게 지역의 뿌리를 알릴 소중한 기회였다. 그러나 지난 10년의 성과를 돌아보면 아쉬움이 적지 않다. 유산의 보존과 정비를 넘어, 그 안에 담긴 역사적 가치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며 부산의 대표적인 역사문화 자원이자 교육의 장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다소 미흡했기 때문이다. 연산동 고분군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 장례 문화와 봉분 축조 기술은 물론, 정치적 위상과 사회적 구조까지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특히 도심 한가운데서 고대의 흔적을 마주하고, 천 년의 역사가 오늘의 도시와 맞닿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더욱 각별하다.

그러나 유산의 가치가 크다고 시민들이 그 의미를 저절로 아는 것은 아니다. 기자가 부산 시민을 대상으로 가끔 문화 강의를 할 때, 연산동 고분군에 대해 물으면 이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직접 가본 사람은 없거나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부산에도 경주 왕릉과 비슷한 고분군이 있다”고 하면 대부분 놀라곤 했다. 도심 한가운데 국가 사적이 있지만, 시민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유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물론 관리 주체인 연제구는 탐방로를 조성하고 2018년부터 연제고분판타지축제를 개최하는 등 고분군을 알리는 데 힘써 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시민들이 체감할 만한 변화로 이어졌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부산 전체의 역사 교육과 문화 정책으로 확장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부산시 차원의 체계적인 홍보와 학교 연계 현장 체험이 지속성 있게 뒷받침됐다면, 더 많은 시민이 고분군의 가치를 알고 부산을 대표하는 역사 문화 자원으로 인식하게 됐을 것이다.

국가 사적은 지정됐다고 끝난 게 아니다. 지정은 보존의 출발점이자 그 가치를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시작점이다. 유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시설을 정비하는 것은 지극히 기본이다. 그렇기에 보존만으로 문화유산의 역할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시민이 역사를 알고 학생이 현장에서 배우며, 방문객이 그 의미를 이해할 때 비로소 문화유산은 오늘의 삶과 연결된다. 보존과 가치 확산은 어느 하나를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 함께 추진해야 할 일이란 얘기다.

이를 위해 부산시와 연제구, 부산시교육청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묻고 싶다. 몇 번의 단편적 행사나 시도로 책임을 면할 순 없다. 이제라도 서로 협력해, 연산동 고분군 등 지역의 역사 유적을 학생들이 직접 찾아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현장학습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관련 교육자료와 탐방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교과서에는 ‘우리 고장 알기’ 단원이 있다. 국가 사적인 연산동 고분군과 주변 지역은 이 단원의 취지에 꼭 들어맞는 훌륭한 교육자료이자 살아 있는 배움터다.

연산동 고분군은 연제구에 있지만, 부산의 고대사와 도시 정체성을 보여 주는 공공 자산이다. 따라서 연제구의 현장 관리와 지역 프로그램을 넘어 부산시가 도시 전체의 역사 문화 정책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무엇보다 관계 기관 간 협력을 끌어 내는 건 부산시의 몫이다. 인근 구군과 협력하고, 부산시교육청과는 학교 교육 및 현장 체험을, 국가유산청과는 보존 원칙에 충실한 활용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문화유산 활용을 역사나 교육 프로그램에 한정할 필요도 없다. 때로는 음악회와 전시회, 공연 등을 열어 시민들이 고분군을 친숙한 문화공간으로 느끼게 해야 한다. 유적의 역사와 가치를 소개하는 영상 시설 설치, 관련 유물을 직접 만들어 보거나 체험할 수 있는 공간 등을 조성할 필요도 있다. 나아가 배산성지와 수영사적공원, 동래고읍성, 세병교와 이섭교, 동래패총, 동래읍성 등을 연계해 부산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탐방로 조성도 필요하다. 이는 이미 〈부산일보〉가 수년 전 제안한 바 있다.

국가 사적 지정 10년은 과거를 기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지난 성과와 한계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10년, 20년을 준비하는 시발점이자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즐겨 찾고, 아이들이 현장에서 역사를 배우며, 새로운 이야기가 끊임없이 쌓이는 공간으로 거듭날 때 연산동 고분군은 비로소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우리 곁에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