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우리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 카말라 이브라힘 이스하그의 '기원'

입력 : 2026-10-21 17: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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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말라 이브라힘 이스하그, '기원'(2022), 2026부산비엔날레 전시 전경. 김종기 제공 카말라 이브라힘 이스하그, '기원'(2022), 2026부산비엔날레 전시 전경. 김종기 제공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커다란 나무.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굵은 줄기 곳곳에서 사람의 얼굴이 솟아나고, 몸은 나무와 뒤섞이며, 가지와 잎 사이로 또 다른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이 나무에 들어가 있는 것인지, 나무가 사람의 몸에서 자라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2026부산비엔날레에 전시된 카말라 이브라힘 이스하그의 ‘기원’은 바로 이 경계에서 시작된다.

근대적 세계관에서 인간은 판단하고 행위하는 주체이고, 자연은 바라보고 이용하는 대상이었다. 생태미학은 바로 이 익숙한 경계를 의심하며, ‘기원’에서는 이런 구분이 무너진다. 인간은 자연을 바라보는 존재이기 전에, 이미 자연 속에서 다른 생명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이 지점에서 이스하그의 작업은 에코페미니즘과도 만난다. 여성과 자연 모두가 오랫동안 지배와 통제의 대상으로 취급되어 왔다. 이스하그의 작업을 곧바로 에코페미니즘으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여성의 몸과 공동체, 자연과 땅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 그의 그림은 오늘의 에코페미니즘적 사유와도 깊이 공명한다.

그리고 이 점은 2026부산비엔날레의 주제인 ‘불협하는 합창’과도 연결된다. 이번 비엔날레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하나로 통일하기보다 “차이를 지우지 않은 채 관계를 맺고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한다. ‘기원’ 속 나무 역시 그런 불협의 합창처럼 보인다. 수많은 얼굴이 하나의 줄기를 공유하지만 어느 얼굴도 같지 않다. 인간과 나무, 개인과 공동체,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들이 서로 동일해지지 않은 채 한 화면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

한 그루의 나무라도 홀로 살아가지 않는다. 뿌리는 땅속에서 물과 흙, 숱한 다른 생명들과 만난다. 인간 역시 그렇다. 생태란 결국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의 다른 이름이다. 한 사람의 몸과 기억 속에는 이미 수많은 타자와 장소와 시간이 스며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라는 존재는 고정되고 완결된 실체가 아니라, 들뢰즈가 말한 ‘다양체’에 가깝다. 하나의 중심에 종속되지 않은 채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고 갈라지고 다시 이어지는 관계의 장이다. ‘기원’ 속 인간과 나무도 그렇다. 하나의 줄기 속에 수많은 얼굴이 있고, 각각의 얼굴은 서로 다르지만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

자연을 인간 바깥의 자원으로 바라보는 순간, 인간은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세계까지 함께 소모한다. 그림을 다시 바라본다. 수많은 얼굴이 한 그루 나무 안에서 살아 있다. 서로 다르지만 누구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이스하그가 말하는 ‘기원’일 것이다. 존재는 혼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계속 만들어진다. 인간은 자연의 바깥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자연의 바깥에 있지 않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