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라 마르세예즈'와 부산

입력 : 2026-10-27 18: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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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는 고대부터 프랑스(갈리아)의 대표적 항구도시였다. 프랑스 남부 항구도시라는 점에서 대한민국 남부 대표 항구도시인 부산과 아주 닮은 곳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 대표 도시 중 하나이지만 가장 프랑스답지 않은 도시로도 꼽힌다. 지금은 무역선이 아니라 레저용 요트가 넘실거리는 지중해 대표 휴양도시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이 마르세유가 바로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의 탄생지다. 마르세유 도심에는 라 마르세예즈의 탄생을 기념하는 박물관까지 있다.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어로 ‘마르세유의 것’ 정도로 풀이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마르세유의 노래 혹은 마르세유 행진곡 등으로 통한다.

라 마르세예즈는 1792년 프랑스 혁명정부가 오스트리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할 때 만들어졌다. 당시 육군 대위로서 음악 공부를 한 바 있던 루제 드릴이 라인 방면 군 사령관에게 바치기 위해 ‘라인 군을 위한 군가’로 만들었다. 이 때문에 ‘(적들의) 불순한 피로 우리의 밭고랑을 적시자’는 내용이 포함될 정도로 선동적이고 과격하다. 전쟁에 임하는 군인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군가가 프랑스 국가가 된 것은 몇 달 후 벌어진 마르세유 사람들의 행동이 계기가 됐다.

그해 7월 마르세유에서는 ‘죽을 각오가 된 사람을 모집한다’는 제목의 구인 광고가 나돌았다. 파리로 행진해서 폭군을 처단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내용의 이 광고에 응한 사람은 모두 517명. 이들의 호응 이면에는 나약한 파리 사람들에게 혁명을 맡길 순 없다는 마르세유 사람들의 생각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방이라며 무시당해 온 마르세유의 기개를 보여줘야 한다는 복수심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마르세유에서 출발해 파리에 입성할 때까지 28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며 프랑스를 종단했다. 혁명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이들의 행동이 널리 알려지면서 라 마르세예즈는 결국 국가의 지위에 올랐다.

최근 폭동으로 변질되며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지만 프랑스의 국내 시위에서 라 마르세예즈는 늘 상징적 존재였다. 라 마르세예즈는 민중의 혁명을 상징하는 노래로 꼽힐 뿐 아니라 지역민으로서 파리로 행진하며 전국적으로 당당히 목소리를 높인 마르세유인들의 기개가 담긴 노래로도 꼽힌다. 그 라 마르세예즈가 앞으로 프랑스 사태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마르세유와 비슷한 처지인 부산의 입장에서는 더욱 관심이 간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