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노후계획도시 재설계의 기회

입력 : 2026-10-28 17:5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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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지 법무법인 성연 대표변호사

부산시, 해운대 등 정비기본계획 고시
노후 주거지 체계 정비 본격 추진 나서

비용 조달 위해 6000억 원 펀드 조성
초기 사업비 낮은 금리 조달토록 지원

법 마련한 규정 특례·지원 최대한 활용
미래 세대 뒷받침할 도시 전환시켜야

한때 새로운 주거문화의 상징이었던 계획도시들이 노후화하고 있다. 공동주택은 개별 소유자의 의사와 비용만으로 건물이나 단지 전체를 정비하기 어렵다. 더욱이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주택과 도로, 생활시설이 함께 노후화하면 한 단지의 재건축만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주택 정비와 교통·공원·생활시설의 재편을 함께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부산시는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화명·금곡과 해운대에서 선도지구를 선정하고, 올해 4월 두 지구의 정비기본계획을 비수도권 최초로 고시했다. 이후 특별정비계획 수립과 특별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개금·당감, 만덕, 다대, 모라에 대해서도 기본계획 마련이 완료될 예정으로, 부산의 여러 생활권을 아우르는 정비의 밑그림을 제시했다.

노후계획도시정비법은 일정 요건을 갖춘 계획도시를 광역적·체계적으로 정비하기 위한 법이다. 통합정비에 필요한 규제 특례와 지원을 규정한다. 특별정비구역에서는 용적률 등 건축규제를 완화할 수 있고, 공공기여 등을 고려해 공공성이 인정되면 재건축 진단을 면제하거나 완화할 수도 있다. 규제 완화와 함께 지분 쪼개기 행위 제한 등 사업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규정도 포함되어 있다.

용적률 특례는 대규모 정비 사업을 뒷받침하는 핵심 수단이다. 노후계획도시정비법은 용적률 제한을 국토계획법령상 최대한도의 150%까지 완화할 수 있도록 한다. 개발 여력이 확대되면 기존 여건에서는 추진하기 어려웠던 고층 아파트의 재건축 사업에도 가능성이 열린다. 부산시가 기본계획에서 제시한 용적률 상향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실제 사업성은 공사비와 금융비용 등에도 영향을 받으므로, 특례의 효과는 개별 구역의 여건을 반영한 사업계획을 통해 구체화될 것이다.

사업의 실행을 지원하는 장치도 마련됐다. 부산의 선도지구인 화명·금곡지구 12구역과 해운대지구 2구역은 주민 참여 등을 고려해 우선 추진할 지역으로 선정됐다. 선도지구는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바탕으로 통합정비의 경험을 축적하고 후속 사업의 기준을 마련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는 노후계획도시정비 사업비 조달을 지원하기 위해 6000억 원 규모의 미래도시펀드를 조성했다. 사업시행자가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보증을 바탕으로 초기 사업비를 낮은 금리로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공공기여에도 별도의 산정체계와 이행방식을 두었다. 일반 정비사업에도 사업 유형에 따라 기반시설 기부채납과 임대주택 공급 등의 공적 부담이 부과된다. 한편 노후계획도시정비법은 증가 용적률에 연계한 공공기여를 공공주택과 기반 시설, 도시기능 향상에 필요한 부지·시설 제공이나 관련 비용 부담으로 이행하도록 한다. 정비로 확보되는 개발 여력을 지역에 필요한 시설 확충으로 연결할 수 있다.

부산시도 공공기여를 공원과 생활SOC 조성, 교통체계 개선 등에 활용할 계획을 밝혔다. 생활SOC는 문화·체육·돌봄 등 일상에 필요한 생활기반시설을 뜻한다. 이동이 불편한 지역에서는 교통과 보행환경을 개선하고, 생활시설이 부족한 곳에서는 주민 수요에 맞는 시설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 시설의 규모뿐 아니라 주민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위치와 접근성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토연구원은 노후계획도시 정비의 목적을 실현하려면 주택단지 정비와 함께 다양한 정비방식을 유도하고, 도시기능을 진단할 지표와 실행력 있는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노후계획도시정비법의 성과를 새로 짓는 주택의 수와 함께 경제적 자족성, 기반 시설의 적정성, 생활환경의 접근성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와 단지, 주거지와 역·공원·생활시설의 연결을 개선하는 일은 이러한 목표를 구체화하는 방법이다.

부산시 계획에서도 그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해운대에서는 도시건축 통합계획을 통해 토지이용 방향을 건축물 배치와 가로·공원·보행체계로 구체화하려 한다. 개금·당감은 경사지 보행환경 개선, 만덕은 역과 하천·주거지의 연결, 다대는 바다와 아미산의 녹지·경관축, 모라는 단절된 보행공간 개선 등을 기본계획안에 담았다. 광역적 정비체계를 부산의 생활권과 지형에 맞게 구현하려는 접근이다.

계획도시가 조성 당시의 주택 수요에 대응한 해법이었다면, 노후계획도시정비는 변화한 인구 구조와 생활 방식에 맞춰 도시를 재설계하는 과정이다. 법이 마련한 특례와 지원을 활용해 기존 생활권의 자산을 살리고 주거·교통·생활시설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기회다. 현재 진행되는 부산의 노후계획도시 정비는 다음 세대의 삶을 뒷받침하는 도시 전환의 선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