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을 찾을 때 필수인 내비게이션에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들어 있다. 시간의 흐름이 물체의 속도와 중력에 따라 가변적이라는 통찰이 없었다면 GPS는 존재할 수 없었다. 대기권 밖 항법위성의 시계는 지상과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보낸 위치 정보를 지상에서 수신한 뒤 시간차를 보정하지 않으면 도로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다.
이 경이로운 기술이 일상으로 들어온 배경에는 비극이 있다. 1983년 대한항공 007편이 항로를 벗어나 옛 소련 영공에 진입했다가 격추되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계획 항로를 벗어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탓이다. 미국은 사고 재발을 막겠다며 자체 개발한 위성항법시스템인 GPS를 민간 항공기에 개방했다. 군사적 목적으로 탄생한 기술이 손안의 스마트폰에까지 들어온 경위다.
무료로 개방된 GPS는 세계 곳곳으로 퍼져 위치 정보의 기반이 됐다. 관련 장비와 서비스 시장이 성장했고 운송·물류, 농업·측량·건설의 생산성도 높아졌다. 위성항법이 국가 안보와 산업의 기반이 되면서 기술 종속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적성국뿐만 아니라 동맹 사이에서도 독자 위성 발사 붐이 일었다. 러시아는 글로나스, 중국은 베이더우(北斗), EU(유럽연합)는 갈릴레오, 일본은 미치비키(QZSS)를 구축해 모두 무료 개방했다.
삼성 갤럭시 사양표에서 ‘위치 기술’ 항목을 보면 ‘GPS, Glonass, Beidou, Galileo, QZSS’가 적혀 있다. 미국, 러시아, 중국, EU, 일본 위성 신호를 동시 수신한다는 뜻이다. 현실에서는 각축전을 벌이는 나라들의 위성이 손안에서는 함께 길을 찾아주는 풍경이 흥미롭다. 또 위성항법의 대명사처럼 쓰이던 GPS가 이제는 여럿 중의 하나가 된 사실도 새삼스럽다.
우주항공청은 최근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 1호기의 상세설계를 점검하고 2029년 9월 발사 일정을 확정했다. 2035년까지 위성 8기를 쏘아 올려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 위치·항법·시각 정보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성공하면 세계에서 일곱 번째다. 지도 앱뿐 아니라 드론과 자율주행차, 항만과 해상 운항 등 활용 분야도 넓다.
최근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스타링크 접근을 제한하는 바람에 우크라이나군은 드론 작전에 차질을 겪었다. 통신위성과 항법위성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기술 종속의 취약성이라는 교훈은 같다. 한국은 외부에 길을 묻지 않고 스스로 개척하는 국가로 전진한다. KPS의 장도를 응원한다.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