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하고 4년이 지났을 때였다. 마트에 갔다가 크기와 색깔이 일정한 토마토를 보고 위화감을 느꼈다. 자연에서는 나올 수가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토마토를 직접 키우면 살짝만 건드려도 향이 물씬 올라온다. 하지만 마트 토마토는 향이 나지 않았다. 향과 맛이 없는 쌈 채소를 먹어도 괜찮은지 생각하게 됐다.”
지난달 5일 영화의전당 두레라움 광장 ‘부산 작은 햇밀장’에서 만난 토종 벼를 자연 재배하는 다랑협동조합 김진한(47) 대표 농부의 이야기였다. 특히 우리의 주식인 쌀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김 농부는 “개량종 벼의 볍씨를 받아 다음 해 농사를 지어 보니 원래의 품질이 나오지 않았다. 종자 역할을 못 하는 종자가 옳은지를 고민하다 토종 벼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라고 말했다. 자연 재배·다랑논·토종 쌀 같은 낯선 단어들, 그리고 직장인에서 농부로 전직한 그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추수가 막바지인 지난주 초 경남 밀양시 단장면 감물리의 다랑논으로 찾아갔다.
다랑협동조합 김진한 대표 농부가 올해 수확한 토종 벼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농사는 나의 운명
김 농부의 할머니는 경북 예천에서 지금도 농사를 짓는다. 지난 추석에 갔을 때도 올해 쌀농사가 잘됐냐고 물어보셨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할머니의 농사일을 도우러 다녔다. 그게 힘들지 않고 좋았다. 고등학생 시절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는 당연히 반대했다. 지긋지긋한 농사와 헤어지기 위해 고향을 떠나 부산에 정착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도 남구 대연동 집에서 영도까지 버스를 타고 다니며 농사를 지었으니 뭐….
김 농부는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의 출판사에 취직했다. 서울에서 결혼하고 13년간이나 살 줄은 몰랐다. 출판사에서도 하필이면 <로컬푸드>의 출판을 맡았으니, 농사는 운명이었다. 하지만 귀농하자는 남편에 선뜻 응하는 아내가 이 세상에 있을 리 만무하다. 술만 먹고 들어가면 울면서 내려가자고 설득했다. 어느 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혼자서 내려가겠다고 했다. 결국 아내는 농사 일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승낙했다.
경남 밀양시 단장면 감물리 다랑논에 비단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다랑협동조합 제공
2017년 밀양 감물리로 귀농했다. 처가가 밀양이기도 했지만, 다랑논이 있어서였다. 다랑논은 산비탈에 기대어 층층이 쌓아 만든 계단식 논이다. 다랑논은 ‘농부가 아로새긴 대지의 예술’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다랑논은 땅이 반듯하지 않고 생산성이 떨어지기에 방치된 곳이 많았다. 그래서 농지를 구하기 수월했고, 임대료도 쌌다. 가난한 귀농 청년이 자리 잡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산비탈의 경사에 기대어 물을 댔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기 어려우니 자연 재배가 답이었다. 자연 재배는 가급적 인간의 개입을 줄이는 농법으로, 무비료·무농약·무경운의 삼무농법(三無農法)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은 그런 농사가 힘들지 않냐고 묻는데, 뭘 모르는 소리다. 비료도 안 뿌리고, 농약도 안 치는 게으른(?) 농법은 훨씬 수월할 수밖에 없다. 도롱뇽, 가재, 남생이가 물길을 따라 들어왔다. 말과 글로만 알았던 생물 다양성이 매일 눈앞에 펼쳐지니 이 소중한 다랑논을 지키고 싶어졌다.
다랑논에는 생명 다양성이 펼쳐진다.
2019년 토종 벼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과 ‘다랑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은퇴한 천주교 사제 유영일 조합원이 “젊은 사람들이 농사를 이어가야 한다”라며 다랑논 2500평을 선뜻 내놓았고, 몇몇 어르신도 휴경 중인 다랑논을 임차료 없이 내어줘 큰 힘이 되었다. 조합원들은 빈 축사에 앉아 밥을 먹고 일을 마치면 제대로 씻지도 못했지만 힘든 줄 몰랐다. 마침내 가을이 되자 다랑논은 찬란한 비단 물결로 변했다. 다랑논마다 품종이 다른 토종 벼를 심어 빛깔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쉽고 즐거운 쌀농사라니
“쌀농사는 쉽다. 일 년에 네 번만 와도 된다.” 김 농부가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했다. 다랑논에 견학 오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농사가 힘들고, 쌀이 귀하다는 걸 알게 해달라”라고 요구해 언쟁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 김 농부가 굳이 “새나 쥐도 이삭을 먹고 같이 살아야 한다. 농사는 힘들지 않고, 즐거울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텃밭은 1~2주만 안 가도 풀이 자라 농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쌀농사는 다르다. 내가 먹을 양만 농사짓겠다면 그다지 할 일이 많지 않다.
고령자가 많은 농촌에서 농기계가 들어가기 힘든 작은 논은 방치되기 십상이다. 다랑협동조합은 2019년부터 매년 그런 땅을 빌려 부산, 김해, 창원 등 도시민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 이른바 ‘다랑논 공유 프로젝트’다. 일 년 동안 파종, 모심기, 김매기, 추수까지 네 과정을 함께 한다. 1000평을 2~3월에 20평씩 나누니 매년 100명 가까이 참가하는 셈이다. 평소에는 농부들이 관리해 지역의 초등학교나 단체에서도 꾸준히 오고 있다.
다랑협동조합 조합원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다. 다랑협동조합 제공
이삼 년 참여했던 분이 봉사자로 도움을 주다, 조합원이 되기도 했다. 귀농을 준비하며 꾸준히 관계를 맺거나 근처 마을에 귀촌하는 분도 생겼다. 토종 벼 볏짚을 구하러 다랑논을 찾아왔던 공예 전문가는 볏짚 공예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다양한 사람이 모이자, 다랑논 공유 프로젝트가 풍성해졌다. 아이들은 직접 농사지은 쌀이라고 하면 한 톨도 안 남기고 밥을 다 먹는다.
■다시 살아나는 우리 토종 벼
1910년대 일제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반도 전역에서 재배되던 재래 벼 품종은 1451종에 달했다. 전국의 마을마다 최적화된 토종 벼가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다양성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지고 말았다. 일본은 더 많은 쌀을 가져가기 위해 벼 품종을 개량하고 통일했다. 토종 벼의 99.9%가 그렇게 사라졌다.
토종 벼 볍씨를 말리고 있다.
다행히 전국 각지 뜻있는 농부들의 노력으로 100년 만에 토종 벼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부활한 토종 벼는 지금까지 450여 종이다. 경기도 우보농장을 비롯한 토종 볍씨 공부 모임은 각 지역에 볍씨를 나눠 주는 채종포를 운영하고 있다. 다랑협동조합은 경남의 채종포를 맡았다. 김 농부는 토종 벼가 너무 예뻐서 마치 꽃을 키우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토종 벼는 개량종과 달리 씨를 퍼뜨리는 역할을 하는 벼 수염 ‘까락’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수염이 보관이나 작업을 힘들게 만드니 까락이 없는 쪽으로 개량시킨 것이다.
토종 벼 볍씨를 보관하고 있다.
귀도(鬼稻), 불도(佛稻), 화도(火稻)가 맛이 좋기로 유명한 토종 벼 삼총사다. 귀도는 독특하고 강렬한 생김새 때문에 생긴 이름으로 멥쌀 반 찹쌀 반이 섞인 반찰이다. 부처님의 쌀이란 뜻의 불도는 공양미로 사용했던 내력이 있다. 화도는 까락이 유난히 붉어 논에 불이 난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화도는 놀랄 만큼 독특한 식감과 뛰어난 밥맛을 자랑하지만 바람에 잘 쓰러지는 등 키우기가 힘들어 ‘전설의 벼’로 불린다. 다른 쌀보다 3~4배 비싼 이들 토종 쌀은 몸이 아픈 환자들이 많이 찾는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하여
김 농부가 국내 최대 토종 벼 농가인 창원 주나미농장 우봉희 농부와 함께 심은 것까지 포함하면 올해 토종 벼 재배 면적은 5만 평으로 늘어났다. 최근 처음으로 부산의 한 솥밥 전문 식당에서 토종 쌀을 쓰겠다고 연락이 온 것도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상황은 더 나빠졌다. 다랑논 보전 활동을 이어왔지만, 농부는 줄고 방치된 땅은 늘어났다. 몇 년씩 묵힌 논은 숲으로 변했고, 논을 타고 내려오던 물길도 막혔다. 함께 고생한 청년들이 떠나가기도 했다.
방치된 땅이 늘어나며 예전 같은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쉽다. 다랑협동조합 제공
하지만 다랑논의 미래 가치는 여전하다. 누구나 찾아와서 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농업이기 때문이다. 김 농부는 “땅을 사지 않아도 되고, 노는 농기계 등 마을의 장비를 확보하기도 쉬워 소자본으로 쌀농사를 시작하기에 지금 다랑논의 상황이 괜찮다”라고 말했다. 특히 “은퇴를 앞둔 분들이라면 부산과 1시간 거리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자급자족하면서 자녀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여유 있는 삶, 꽤 괜찮아 보인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