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진주 사투리

입력 : 2019-02-20 10: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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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그쿠이 내 그쿠지 니 안 그쿠면 내 그카나.’(네가 그렇게 하니까 내가 그러지 네가 그러지 않으면 내가 그러겠니?) 지난해 말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이 진주 사투리를 소개했을 때다. “저거 가짜”라면서 바로 정정해 주신 진주 출신 친척 아주머니의 본토 사투리는 이랬다. “니가 글쿵께 내가 글카지 니가 안 글쿠모 내가 글쿠나.” 더욱 알아듣기 힘들었다. 진주 사투리는 경상도 사람도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성과 풍성함을 자랑한다.

우리나라는 작은 땅덩이에 신기할 정도로 사투리가 많다. 경남 사투리는 경북과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는 데, 신라가 가야를 통합하기 전의 옛말이 남아있어서다. 경남 사투리 중에서도 진주 사투리는 또 다르다. ‘진주말’의 뿌리는 삼국시대 이전의 변한에 있다. 신라에 흡수되기 전의 진주는 가야의 땅이었다. 이후로 가야어와 신라어, 백제어가 두루 섞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진주에는 거기서만 쓰는 특별한 말들이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에나’다. 어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진주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에 두루 쓰인다. ‘에나가’ 대신 ‘정말이냐’라고 억지로 표준어를 쓰면 고유의 말맛이 영 살지 않는다. ‘하모’(아무렴), ‘배끼’(공연히), ‘보도시’(겨우)처럼 어느 정도 알려진 말들을 비롯해 ‘싸개라’(많다, 대견하다), ‘엄첩다’(엄청스럽다), ‘상구’(아주, 전혀), ‘칼컬타’(깨끗하다), ‘쑥쑥다’(지저분하다) 등등 구수하고 정감 어린 진주말은 수두룩하다.

최근 진주 사투리가 시간이 흐를수록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진주말의 대표격인 ‘에나’를 쓰는 지역 초·중·고생들이 이제 10% 미만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올 초 개봉한 영화 ‘말모이’가 우리의 말과 글이 겨레의 얼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임을 보여주었듯, 지역 고유의 정신성을 품고 있는 사투리 역시 후대에 계승해야 할 우리의 문화자산이다. 사투리에는 고어의 원형질은 물론 누대에 걸쳐 축적된 역사와 사회의 정서적 상징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서울 중심의 표준어 체계가 세워진 뒤로 토박이 사투리는 자꾸만 꼬리를 사리는 형편이다. 지역민 스스로가 그 지역의 사투리를 부끄러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표준어는 맞는 말이고 사투리는 틀린 말이라는 건 잘못된 인식이다. 이런 편견은 서울 중심, 중앙 중심 시각에 오염된 결과다. 표준어에 없는 곱고 아름다운 말을 발굴하고 살려내야 한다. 우리 문화를 웅숭깊게 살찌우는 길, 사투리에 숨어 있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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