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했던 어학원마다 다니던 도중에 문을 닫았습니다. 벌써 몇 번째 ‘학원 뺑뺑이’를 돌고 있어요.”
부산의 한 국립대생 손 모(25) 씨는 최근 다니던 중구 광복동의 한 대형 어학원 폐원 소식을 전해 들었다. 손 씨가 경험한 폐원만 지난 1년 사이 세 번째다. 이미 지난해 경성대 인근 어학원을 다니다 광복동의 어학원으로 옮겼고, 다시 광복동의 또 다른 어학원을 찾아갔지만 이번에도 폐원한 것이다. 모두 학생 수가 줄어든다는 이유였다.
손 씨는 “어학 스펙을 쌓아야 할 때에 가는 학원마다 폐원을 하니, 이젠 서울에 사는 것 자체가 스펙이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며 “그렇다고 영어 점수를 따러 연고도 없는 서울에 오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최근 부산에서 대형 어학원의 폐원이 잇따르며 취업을 준비하는 지방대생들의 한숨이 깊어진다. 대형 어학원의 잇단 폐업은 지역의 열악한 취업 인프라 현실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9일 지역 학원가에 따르면 20년간 자리를 지켜왔던 중구 광복동의 한 대형 어학원은 서면점으로 통합 운영될 예정이다. 부산대 인근의 또 다른 대형 어학원도 폐원을 준비 중이라고 알려졌다.
부산에서 20여 년간 대형 어학원을 운영한 A 원장은 “20년 전만 해도 부산에 브랜드가 있는 대형 어학원이 10곳이 훌쩍 넘다가 지금 알려진 대형 어학원 중 살아남은 곳은 약 3곳뿐”이라며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온라인 강의로 넘어간데다 부산은 젊은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특히 대형 어학원이 급속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부산 대형 어학원의 도미노 폐원으로 당장 피해를 보는 것은 지역의 취업준비생들이다. 온라인 강의 등 대안이 있지만 토익뿐 아니라 각종 자격증과 인턴 경험 등 높은 스펙을 갖춰야 하는 최근의 취업 시장에서 기본으로 간주되는 토익 목표 점수 도달이 늦어지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는 게 이들의 공통적인 목소리다. 부산대에 재학 중인 박 모(23) 씨는 “공채 시기와 선발 인원은 한정적이라 빠르게 많은 스펙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데, 시작 단계에서부터 수도권 학생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호소했다.
열악한 취업 인프라의 결과는 부산의 낮은 취업률로도 확인된다. 이날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의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연보에 따르면 2022년 부산은 전국 지자체에서 취업률 최하위를 기록했다. 당해 부산의 대학 졸업자 4만 4804명 중 2만 5682명(65.6%)만이 취업에 성공했다.
경남경제투자진흥원 서선영 경제분석센터장은 “수도권에는 대학, 연구기관, 스타트업, 기업이 밀집돼 있어 취업에 활용할 자원이 풍부하고, 청년층도 집중돼 있다”며 “취업,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비수도권 학생들은 수도권만큼 혜택을 누리지 못하다 보니 동기 부여도 낮아지고, 취업을 해도 장기적으로 유지가 안 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