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을 개발할 때 인허가 애로사항을 파악하려고 디벨로퍼들을 만나보면 온갖 하소연을 합니다. 그런데 인허가권자인 지자체나 공공기관을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는 아예 얘기를 못해요. 보복당할까봐 입을 꾹 닫는거죠.”
국토교통부에서 부동산 개발사업 인허가 지연 실태를 조사하는 한 공무원의 말이다.
이재명 정부가 주택 공급 확대책의 하나로 인허가 기간 단축을 공약한 가운데, 개발업자들이 사업의 최대 불확실성으로 꼽아 온 인허가 지연 문제가 개선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15일 국토부가 건축공간연구원에 의뢰해 부동산 개발사업 관계자 317명을 설문한 결과를 보니 66%가 ‘인허가가 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고 답했다.
인허가 지연은 토지 용도변경이나 각종 영향평가 심의, 사업계획 승인 단계에서 주로 발생한다.
사업 유형이나 규모에 따라 건축, 경관, 교통영향평가, 교육환경 등 여러 분야 심의와 법령·규정 검토 등을 통과하면 사업이 승인되는데, 정상적으로 진행돼도 적잖은 시일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 인허가 담당자가 자의적으로 법령을 해석하거나 지나친 조건을 부과하는 경우, 모호한 이유로 서류를 반려하거나 보완을 지시하는 경우, 지자체 요구를 따랐는데 주민 민원이 발생하는 경우 등 다양한 이유로 인허가가 난관에 부딪힌다.
특히 무리한 설계 변경이나 엄청난 금액의 기부채납을 인허가 조건으로 내거는 지자체가 사업 추진을 어렵게 하는 주 요인으로 꼽혔다.
국토부가 수집한 사례를 보면, 지자체가 요구한 기부채납이 뜻하지 않게 주민 민원을 초래해 인허가 절차 진행이 늦어지면서 사업 시행자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서을의 한 아파트 재건축 과정에서는 지자체가 용적률과 층고 등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는 조건으로 노인 복지시설을 설치하라는 조건을 붙였다. 시설에 부정적 인식을 보인 일부 주민들의 반발로 사업이 표류하는 곡절을 겪은 끝에 주민 설문조사를 거쳐 수용이 결정됐지만 1년 이상 절차가 지연됐다.
단지 내에 특정한 조경을 설치하라는 조건을 내걸어 사업자가 불합리한 요구라고 느낀 사례도 있다.
한 오피스텔 단지 인허가 과정에서는 지자체 건축심의에서 단지 내에 석가산을 설치하라는 의견이 담겼다. 석가산은 공원 등에 돌을 쌓아 산 모양을 만들고 인공폭포 등을 설치하는 고급 조경물이다.
석가산을 추가 설치하면 사업비가 늘어나지만, 이 사업주는 거부할 경우 인허가가 지연될 가능성 등을 우려해 지자체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부 설문조사에서 최근 3년간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면서 인허가 지연으로 피해를 봤다는 응답은 40.4%, 사업이 지연될까 봐 가급적 행정청 요구를 수용한다는 답변은 80.6%였다.
부동산 개발사업 초반에는 단기자금 차입을 위해 제2금융권 등에서 고금리로 브릿지론을 빌려 쓰다가 이후 사업성이 담보되면 저금리 대출로 갈아탄다. 인허가가 지연되면 이자비용이 그만큼 늘어나는데, 손실을 상쇄하고자 이를 추후 분양가격에 반영하므로 결국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국토부는 인허가를 둘러싼 지자체-사업자 간 이견 조정, 지자체에 유권해석 제공 등 인허가 단축을 지원하는 ‘신속 인허가 지원센터’를 연내 출범할 계획이다.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