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열대야가 연일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도심을 달구고 있지만 러닝(달리기) 열풍은 주춤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더위가 가시지 않은 초저녁에도 달리며 땀 흘리는 시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달리기는 단순 유행이 아닌 일상 생활 스포츠로 자리잡으면서 국민 운동으로 성장하고 있다.
□데이터로 입증된 ‘국민 운동’
달리기 인구는 해마다 늘고 있다. 한국갤럽의 지난해 말 조사결과 지난 1년간 조깅이나 달리기 경험이 있는 응답자의 비율은 2021년 23%에서 2023년 현재 32%에 이른다. 국내 달리기 인구만 1000만 명으로 추산될 정도다. 이처럼 달리기 열풍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달리기가 건강에 좋다는 것이 수많은 데이터로 입증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하버드대는 5만 5000명을 대상으로 15년간 장기 추적한 결과 한 주에 50분 이하로 달려도 심혈관·전체 사망률을 유의미하게 낮췄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달리기는 고혈압을 비롯해 고지혈증, 제2형 당뇨, 비만 등을 예방·개선한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우울·불안을 완화한다. 일명 ‘러너스 하이’를 통한 엔도르핀, 엔도카나비노이드 등의 분비로 행복감을 느끼고 기분을 개선하는 효과도 거둔다. 복부지방 감소에 효과적이며, 근육과 뼈를 강화해 골밀도를 높이고 스포츠 관련 부상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최근 들어서는 ‘느리게 달리기’로 변주되기도 한다. 느리게 달리기는 일본 후쿠오카대 다나카 히로아키 교수가 창안한 저강도 유산소 운동으로, 편안히 숨 쉬며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인 시속 6~7km 정도로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걷기와 달리기의 중간 정도인 ‘대화가 가능한 페이스’인 셈이다. 관절에 부담을 줄어들고, 지구력 훈련에 적합한 형태여서 부상 위험도 상대적으로 적다. 심장 기능과 지구력이 향상되고 피로도도 낮다. 보행보다 근육 활동량이 높아 하체·코어 근육 강화에 효과적이며, 특히 70세 이상 노년층에서 근지구력 증가, 지방 감소 등 전반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달리며 건강 챙겨요”
이처럼 달리기 열풍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달리기 모임이 속속 조직되고 있다. 인제대해운대백병원 달리기 동호회 ‘해백런런’이 한 예다. 해백런런은 지난 3월 병원 대외교류처에서 근무 중인 이동엽(43) 씨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점심 자리에서 “우리도 뛰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동호회가 꾸려졌다. 축구, 스키, 수영 등 다른 운동과 달리 진입 장벽이 낮고 별다른 장비 없이 언제 어디서든 뛸 수 있어 참여도가 높았다. “부산은 러닝 도시”라고 입을 모은 이들은 각각의 집 근처는 물론 직장 근처인 동백섬, 미포송정 구간 등을 달리기 코스로 활용 중이다. 3~4명씩 소규모를 이루거나 개인 일정에 따라 자유롭게 달리지만, 주 1회 단합 달리기를 통해 ‘함께 달리는 즐거움’을 공유한다.
달리기 인증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격려하는 이들은 달리기를 통해 삶의 변화가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이동엽 씨는 “주말부부가 되면서 퇴근 후 자유시간이 늘자 건강하게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던 중 달리기를 시작했다”며 “달리기를 하다보니 술 약속이 자연스럽게 줄고 식단도 조절하게 됐다”고 밝혔다. 오는 11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김병훈(32) 씨는 “체중 감량을 위해 일주일에 최소 2번 10km 정도를 달리는데 확실히 살이 많이 빠졌다”며 “여러 직급의 동료들을 한자리에 볼 수 있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김승수(35) 씨는 주 5일 10km씩 달리면서 혈압·혈당·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졌다고 했다. 김 씨는 “육아하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버거웠는데, 달리면서 스트레스도 풀리고 체력도 좋아졌다”며 “아이들과 잘 놀아주게 되면서 좋은 추억도 쌓을 수 있게 됐다”고 웃음지었다.
□식단 조절 등 뒷받침돼야
달리기 인구 1000만 시대라고는 하지만 막상 달리는 게 어려운 사람들도 많다. 20년간 꾸준히 달리기를 실천해 온 인제대해운대백병원 응급의료센터 박하영 센터장은 우선 빠르게 걸어볼 것을 조언했다. 땀이 날 정도의 빠르게 걷기가 익숙해지면 느리게 달리기를 거쳐 달리기로 갈 수 있다고 했다. 처음부터 10km를 달린다고 생각하지 말고 달리는 거리를 조금씩 늘려가는 것도 좋다. 박 센터장은 “남성의 경우 1시간에 10km를 달린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1시간 반에 10km를 달린다고 생각하고 속도를 조금씩 올려가는 것도 달리기에 익숙해지는 좋은 방법”이라고 권유했다.
식단 조절은 필수다. 달리기 전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가볍게 먹으면 달릴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달리기를 끝낸 뒤에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것이 좋다. 달리고 난 뒤에는 되도록 먹지 않는 것이 좋지만 먹고 싶다면 닭가슴살이나 계란 등의 단백질 위주로 섭취하는 것이 좋다. 폭식과 음주는 절대 금물이다.
달릴 때 무릎 통증이 느껴진다면 체중이 적정 수준을 벗어나서일 수도 있다. 달려서 무릎이 아픈 게 아니라 몸무게가 무릎 통증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살을 천천히 빼면서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의 거리와 속도로 달리기를 할 필요가 있다. “달리는 사람은 젊다”는 박 센터장은 “달리기는 개인 의지가 중요한 운동인 만큼 꾸준한 습관과 절제된 생활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