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통 연극 ‘가부키’라는 다소 낯선 소재로 예술가들의 열정과 질투, 우정과 화해를 그려낸 영화 ‘국보’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재일 한국인 이상일 감독의 연출로 완성된 이 작품은 전통 예술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세계 영화계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21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BIFF 갈라 프레젠테인션 기자회견에 영화 국보의 메가폰을 쥔 이상일 감독과 주연 배우 요시자와 료가 등장했다. 국보는 일본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가부키 무대에 인생을 바친 두 배우의 반세기 여정을 따라간다.
야쿠자 집안에서 태어난 기쿠오는 가문의 정통성을 지닌 슌스케와 친구이자 라이벌로 얽힌다. 작품은 우정과 갈등, 존경과 질투가 교차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궁극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인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 영화는 개봉 102일 만에 일본 현지에서 1000만 관객 돌파라는 금자탑을 쌓았으며, 실사 영화 흥행 2위에 올랐다. 상영 시간이 3시간에 이르는데다 가부키는 직접 봐야한다는 고정관념 등 흥행에 부정적인 요소가 존재함에도 이를 넘어선 것이다.
이 감독은 1000만 관객이 영화를 관람한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유는 잘 모르겠다. 상상도 못 했다. 여러분께서 분석을 해달라”고 한국어로 소감을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일본인들도 가부키를 잘 알지만 실제로는 접하기 쉽지 않다. 이 영화가 새로운 발견이 되었을 것”이라며 “와타나베 켄과 요시자와 료 등의 배우들이 인생을 걸고 연기한 점도 매력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주연을 맡은 배우 요시자와 료는 촬영 전 1년 반 동안 가부키 연습에 몰두하며 기쿠오 역을 준비했다. 그는 “아름답게만 추지 말고 감정대로 표현하라는 감독님의 주문이 가장 어려웠지만, 그만큼 값진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영화는 혈통과 외부자의 대비라는 주제를 중심축으로 삼는다. 슌스케는 정통 계보의 무게에 짓눌리고, 기쿠오는 혈통이 없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장벽에 부딪힌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혈통을 가진 자도, 외부자도 각자의 업을 짊어지고 살아간다”며 “결국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아웃사이더에 대한 관심은 제 영화의 일관된 주제다. 제 정체성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이번 작품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천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학창 시절 본 그 영화가 충격으로 남아 있다”며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국보에 예술과 삶이 교차하는 풍경을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에서 한국 관객과 첫 만남을 가진 국보는 지난 5월 제78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세계 초연을 마친 바 있다. 또 제98회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일본 대표작으로 지명돼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와 오스카 수상을 놓고 맞붙게 됐다.
이 감독은 “영화란 무엇인지, 무엇을 찍어야 관객에게 기쁨을 줄 수 있을지 늘 고민해야 한다”며 “예술가의 삶을 통해 또 다른 감동을 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