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동서발전 화력발전소 붕괴 사고 나흘째인 9일 무너진 보일러 타워 5호기 양옆으로 4·6호기가 위태롭게 서 있다. 중수본은 무너진 보일러 타워 5호기 외에도 추가 사고 가능성이 제기된 4호기와 6호기도 해체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울산 동서발전 화력발전소 붕괴 사고의 원인으로 지적된 ‘필로티식(하부 우선)’ 발파 해체는 안전계획 수립 당시부터 ‘허용 불가’ 등급으로 분류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기둥의 50% 이상을 잘라내는 사전 취약화 작업을 구조 기술사 검토조차 없이 강행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된다.
9일 〈부산일보〉가 더불어민주당 김성회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울산 기력 4, 5, 6호기 해체 공사 안전관리계획서’를 분석한 결과 계획서 곳곳에서 필로티식 발파 해체 공법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내용이 다수 확인됐다.
이와 함께 기둥 단면의 50% 이상을 상하부에서 미리 자르는 사전 취약화 작업이 제대로 된 안전 검토 없이 진행됐다는 의혹도 포착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전문가는 해체와 관련한 전문가 검토가 있었다면 진행이 될 수 없었을 작업이라며 구조 해석이 없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전문가는 “기둥 1개소가 1000t 이상의 하중을 버티고 있는데, 그 단면의 50%를 잘라내는 것은 구조물을 불안전 그 자체로 만든다”며 “이러한 치명적인 ‘취약화 작업’을 하면서 구조 해석이나 구조기술사 검토가 없었던 것이 직접적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이미 해당 공법의 위험성을 높은 수준으로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구조 검토 누락’ 의혹이 제기되는 위험한 작업을 강행하다가 사고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계획서 내 위험성 평가표를 살펴보면 철거 작업 중 ‘벽체, 기둥 해체 시 전도 사고가 있을 수 있다’며 이를 잠재적 위험으로 명시하고 있다. 15점이 최고점인 위험성 등급을 ‘12점’으로 매긴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계획서상 ‘허용 불가’ 수준이며 위험성을 9점 미만으로 낮추는 개선 대책을 세운 뒤에야 작업 재개가 가능한 고위험 작업이었다. 이미 위험한 작업임을 알고도 안전 조치에 실패한 셈이다.
심지어 이 계획서는 ‘붕괴 및 매몰’ 위험(위험도 ‘상’) 대책으로 ‘상부에서 하부 방향으로 철거 작업 진행’을 명시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채택된 방식은 정반대였다. 발파 전 본관동 하부 14m 구간은 사전에 철거하고 남은 기둥마저 깎아내는 방식이었다. 안전계획서상 상부에서 하부로 작업하는 원칙을 세우고도 실제 공사는 정반대인 ‘필로티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처럼 안전관리계획서와는 전혀 딴판의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관리감독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계획서는 붕괴 매몰 위험 대책으로 ‘관리감독자 없이 작업자만으로 작업진행 금지’를 못 박았다. 하지만 소방 당국은 브리핑에서 “사고 당시 타워에는 하청업체 직원 9명만 있었다”고 밝혀 이 수칙이 지켜지지 않았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다수의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번 붕괴 사고의 원인이 공기 단축 등을 위해 상당한 위험을 인지하고도 이를 외면한 ‘인재’라는 비판이 거세다. 울산 노동계에서는 “수사 당국이 위험성 높은 작업을 적절한 안전 조치도 없이 누가, 왜 승인하고 강행했는지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라고 촉구하고 있다.
한편, 9일 현재 이번 붕괴 사고로 매몰된 7명 가운데 사망자 3명의 시신이 수습됐다. 사고 현장에는 사망 추정 2명, 실종 2명이 아직 매몰돼 있지만 추가 붕괴의 우려로 제대로 된 구조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