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과 인접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남서쪽에 위치한 제벨알리(Jebel Ali)항에서 우리 선원들이 촬영한 현지 모습. 선원노련 제공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과의 맞불 공방이 2일(현지 시간) 사흘째로 치달으면서 중동 정세가 ‘시계 제로’로 빠져들었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우리 산업과 경제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일 산업통상부와 산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약 20%를 담당하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봉쇄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국 경제에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이 해협을 통과한 원유의 80%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로 향한다. 이날 산업부는 현재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상황은 아니라고 밝혔다. 지난 1일 호르무즈 해협을 운항 중이던 HMM 컨테이너선 1척이 무사히 이 지역을 빠져 나와 안전하게 운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봉쇄는 시간 문제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밝혔고, 해협 인근에서 민간 선박 4척이 공격받아 사상자가 발생했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제임스 김 한국프로그램국장은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와 천연가스가 상당수 중동에서 공급되고 있으며, 이들 두 자원이 한국 총 에너지 소비의 56% 이상을 차지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분쟁이 장기화하면 한국은 전력 공급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역량에도 상당한 영향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현재 한국은 전략비축기지 9곳에 원유 총 1억 배럴 이상을 비축하고 있고 액화천연가스(LNG)도 52일 치를 보유하고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하메네이 체제를 대체할 이란 내 세력이 마땅치 않아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에도 에너지 공급 문제와 중동 수출 차질, 유가 불안 등 영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미 유가는 상승세다. 글로벌 분석 기관들은 이란이 실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렇게 되면 원유를 사용하는 석유화학, 항공, 해운 등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국민도 물가 상승 압박을 받게 된다.
아울러 한국 기업들이 중동 국가들과 진행하던 방산, 자동차 등의 사업과 수출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동이 화약고가 된다면 정상적인 투자나 연구개발(R&D) 협력 등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범정부 긴급대책반 반장을 맡은 양기욱 산업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중동 지역 에너지 수급 차질에는 비축유 방출 및 대체 물량 도입 등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동 정세의 불확실성이 확대되자 해양수산부도 우리 선박의 안전관리 상황 등을 점검하며 24시간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했다. 아울러 선사 및 선박과 실시간 소통채널을 가동해 안전 문제와 수출입 물류 동향을 공유하고 있다.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은 이날 “선박 인근에 미사일이 투하되고 선원들이 긴급 대피처(시타델)로 몸을 피하는 등 현장의 공포는 극에 달해 있다”며 “정부의 모니터링과 운항 자제 권고만으로는 빗발치는 포화 속에서 선원들을 보호하기에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선원노련은 정부와 선사에 대해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대응 체계 가동과 필요 시 즉각 귀국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긴급 대피 및 귀국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한편 5대 금융그룹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관련 피해 기업 지원에 나섰다. KB국민은행은 최대 5억 원의 운전자금과 시설자금을 대출해 준다고 밝혔다. 신한은행은 피해 중견·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신한 재해복구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하나은행은 경영안정자금 지원 등 총 12조 원 규모의 긴급 금융지원에 나섰다. 우리금융그룹과 NH농협금융지주도 중동 관련 거래 기업 지원 방침을 밝혔다.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