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진구 박사의 글로벌 時事 펀치' 연재를 시작하며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로켓발사 이후 한반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지난 3일 유엔안보리가 최고 수준의 대북제재결의를 채택한 데 이어 한국정부도 독자적인 대북제재 방안을 내놓았다.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이 완전히 폐쇄되고 남북이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강대강의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본보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격랑 속의 한반도와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알기 쉽게 해설하는 '글로벌 時事 펀치' 칼럼을 격주로 연재한다.
집필을 맡은 조진구 박사는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법학박사학위(국제정치 전공)를 받았다. 이후 고려대 평화연구소 연구조교수, 민주평화통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 정책연구위원을 거쳐 현재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박정희 정권의 등장과 1960년대의 한미관계 - 국가적 자립추구와 구조적 취약성' '동아시아에서의 중일 간의 새로운 파워 게임 - 센카쿠열도 문제를 중심으로' 등의 논문을 썼으며, '중일관계-전후에서 신시대로', '한일 경제협력자금 100억 달러의 비밀','일본 최악의 시나리오-9개의 사각지대' 등의 역서가 있다.-편집자주-
"대마도 서부 쪽이 지진으로 무너지는 날에는 메가 쓰나미가 될 가능성이 너무 높습니다."
"우리나라에 쓰나미가 올 가능성이 있어요?"
"대마도 부근에서 진도 7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해운대 여기는 끝입니다."
지난 2009년 7월 개봉해 관객 1천100만 명 이상을 동원했던 윤제균 감독의 재난영화 '해운대'에서 등장인물들이 주고받은 대사다. 우리나라는 일본만큼 지진이 많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2001년 이후 연평균 47회 이상 지진이 발생하고 있어 결코 안전지대라고는 말할 수 없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동일본 대진재(大震災)
지난 11일은 2011년 일본 관측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으로 기록된 동일본 대지진 발생 5년이 되는 날이었다. 당시 지진은 오후 2시 46분에 발생했는데, 진원지에서 약 360km나 떨어져 있는 도쿄에서도 성인이 제대로 서있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 또한 지진 발생 약 50분 뒤 쓰나미가 발생했는데, 놀랍게도 최대 40미터를 넘는 곳도 있었다.
특히, 쓰나미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를 덮쳐 원자로를 냉각시키는데 필요한 모든 교류 전원이 상실되자 일본정부는 `원자력 긴급사태'를 선언했다. 3월 12일 1호기가 수소폭발을 한 데 이어 14일과 15일 2호기와 4호기가 수소폭발을 일으켜 대규모로 방사능이 누출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나마 지진이 사람들이 활동하는 오후에 일어났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을 지도 모른다.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 폭발사고가 겹치면서 피해지역은 매우 광범위했으며 그 규모도 컸다. 그래서 이를 두고 일본에서는 '동일본 대진재'라고 부르는데, 일본 경찰청의 집계에 의하면 1만5천894명이 사망하고 2천561명이 행방불명되었으며 40만 호 이상의 건물이 파손되었다.
일본 정부는 대진재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규모가 16조 엔에서 25조 엔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2016년 우리나라 예산이 약 387조 원인 것을 감안하면 160조에서 250조 원의 경제손실액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원전 사고가 일어났던 후쿠시마 현을 비롯해 아직도 약 17만4천 명이 살던 집과 고향을 떠나 피난생활을 하고 있으며(이 중 약 11만7천 명이 가설주택에서 살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대진재 후 건강이 나빠져 사망하거나 힘든 피난생활을 이유로 자살한 사람이 3천400명을 넘었다.
이러한 인적·물적 피해에 더해 3.11은 일본 국민들의 삶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본사회에는 지진과 쓰나미에 잘 대비하고 있다는 일종의 `안전신화'가 존재했었지만,3.11을 계기로 이것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특히, 원자력은 안전하고 저렴하다는 믿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일본 국민들이 깨달게 되었다.
◆`싸고 안전하다'는 원전 신화의 붕괴
지난 5년 간 용융이 일어난 원자로에서 녹아내리는 핵연료를 냉각시키기 위해 하루 300톤의 물을 사용했지만, 이를 모아놓은 저농도의 오염수 탱크를 보관할 여유 공간이 이제는 없다.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간신히 얼음벽을 설치했을 뿐이다. 앞으로 수십 년 걸쳐 진행될 폐로작업을 위해서는 남아있는 핵연료와 사용후 핵연료 추출이 꼭 필요하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세워져 있지 않다. 모든 게 불투명할 뿐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당시 간 나오토 총리의 `원전 제로' 정책 선언으로 가동하고 있던 원전이 모두 중지되었다. 그동안 원전이나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자신들의 생활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일반 국민들도 원전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특히,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불신은 어느 곳의 원전이든 후쿠시마보다 더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공포심을 갖게 하여 반(反)원전, 탈(脫)원전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원전 의존도 줄이고 친환경에너지 전환 모색해야
그러나 이러한 국민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베 총리는 2030년까지 원전 비율을 20-22%까지 늘리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8월에는 후쿠시마 이후 강화된 규제 기준을 적용하여 가고시마 현에 있는 센다이 원전이 재가동되었다. 올해 들어와서도 후쿠이 현에 있는 다카하마 원전 1호기와 2호기가 차례로 재가동되었다.
다카하마 원전에 인접한 시가 현의 주민들은 원전의 가동 중지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는데, 지난 3월 9일 오쓰(大津) 지방법원은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원자력발전의 역사는 일천하다. 1951년 미국은 EBR-1이라는 원자로를 이용해 세계 최초로 원자력발전을 시작했지만 이것은 실험실 규모였다. 상업용 발전은 1956년 영국의 콜더홀 원전이 5만 kw의 발전을 시작한 것이 처음이다.
우리나라는 1978년 처음으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원전 1호기를 비롯해 현재 24기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고, 전력의 30%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는 원전이 결코 안전하지도 싸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00% 안전한 원전은 없으며, 원전 사고는 대재앙이다.
이제 원전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재생 가능한 자연에너지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며, 100년, 200년 뒤의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들의 최소한의 의무다.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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