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와 새너제이 사이엔 스타트업의 메카이자 미국 IT 산업의 요람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가 있다. 창업인에겐 한 번쯤 꼭 들러봐야 하는 성지 같은 곳이다. 이곳은 1970년대 이래 가장 치열한 지식 노동자들의 전장이었다. 구글, 테슬라, 페이스북, 트위터(현 엑스) 등 오늘날 주목받은 혁신적인 기업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태동했다.
미국에 실리콘밸리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스테이션 에프(Station F)가 있다. 소위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곳이다. 프랑스 파리 13구 센강 변에 위치한 스테이션 에프는 1929년에 만들어진 철도 차량 기지 창고를 개조해 조성됐다. 2017년 이곳에 3만 4000㎡ 규모의 세계 최대 스타트업 캠퍼스가 들어섰다. 인천국제공항 청사를 설계한 프랑스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는 310m에 달하는 이 창고를 3개 존(Zone)으로 나눠 창업가들이 일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스테이션 에프는 기업인 자비에르 니엘에서 시작됐다. 프랑스 통신사 프리(FREE)의 창업주 니엘은 2억 5000만 유로를 출연해 유럽의 실리콘밸리를 탄생시켰다. 그는 흩어져 있는 파리의 스타트업을 모았고, 여기에 투자자들이 가세하자 유럽 실리콘밸리를 만들겠다는 자기 생각을 구체화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있었다.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이 25대 대통령에 당선돼 프랑스를 유니콘 국가로 발전시키겠다고 선언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 박차를 가했다. 스테이션 에프는 이러한 프랑스의 야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곳엔 1000개가 넘는 창업 기업이 모여있다. 그래서 창업벤처 생태계를 이루는 창업자와 투자자, 대학·연구소, 기업 등은 자유롭게 소통하고 협업한다. 칸막이가 없는 업무 공간은 이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업무 방해 같은 부정적 영향보다는 입주 기업 간 교류와 만남을 극대화해 시너지 효과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일 열 번째 민생토론회에서 “프랑스 파리의 스테이션 에프와 같은 청년 창업 허브를 구축해 중소·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이 유니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혁신 생태계 조성에 힘쓰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이 발언이 코로나19 이후 이어진 긴축과 경기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벤처기업과 스타트업에 희망이 되었으면 한다. 새로운 인력을 발굴하고 귀중한 네트워크를 만드는 스테이션 에프 같은 창업 생태계가 구축돼 모쪼록 청년 창업가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펴주길 기대해 본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