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말만 하는 정부·의사, 벼랑 끝에 선 환자 안 보이나” [벼랑에 선 환자들의 호소]

입력 : 2024-05-02 18: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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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권익협의회 김성주 회장

중증환자에게 의료공백 더 고통
암환자 항암 치료 연기되기 일쑤
의정갈등 와중에 환자들은 뒷전
서로 비난하느라 70일이나 낭비
환자 생명권이 가장 중요한 가치
의사도 정부도 환자 보호할 의무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김성주(오른쪽) 회장이 지난달 22일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진료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제공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김성주(오른쪽) 회장이 지난달 22일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진료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제공

“환자들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의료 현장을 떠나는 건 벼랑 끝에 몰린 환자들을 바깥으로 밀어내는 겁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김성주 회장은 2일 〈부산일보〉 전화 인터뷰에서 ‘의료 공백’에 부딪힌 환자들 상태를 이렇게 표현했다. 전공의가 의료 현장을 이탈한 지 70일을 넘겨 버린 시점. 그는 “의료계와 정부는 각자 의견만 내세우는 듯하다”며 “그 중심에 있는 ‘환자 치료’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는 지난달 26일 사직서를 제출한 의대 교수 명단을 공개하라고 정부에 요청한 환자 단체다. 그는 병원을 옮기거나 치료 계획을 세우는 데 필요하다며 “환자 보호 정책 마련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암환자 회원이 약 600명인 협의회는 2018년부터 의료 현장 개선을 요구하며 정보 공유와 권익 보호 등에 힘써왔다. 김 회장은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도 맡고 있다.

그는 수도권 대형 병원 등에서 시작된 의대 교수 ‘주 1회 휴진’에 큰 우려를 보냈다. 김 회장은 “병원에 남은 교수들과 환자들이 열악한 여건에서 겨우 버텼는데 점차 휴진이 확대되면 점입가경이 될 것”이라며 “외래 진료가 환자당 3분 정도 진행됐다면 앞으로 2분, 1분으로 줄어들까 걱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대형 병원 방사선 치료는 기본적으로 몇 달씩 기다려야 한다”며 “3~4주마다 항암 치료가 필요한 암환자들도 진료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중증 환자들에게 의료 공백은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김 회장은 “전공의 사직 때 취소된 암 수술을 아직 못 받은 환자가 있다”며 “집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수술을 받을 날을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 환자는 차라리 올해 검사를 안 받고, 암 진단을 받지 않았다면 마음이라도 훨씬 편했을 것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말기암 환자는 임종을 앞둔 이들을 위한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야 한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김 회장은 “과거에는 방사선 시술 등을 받을 수 있어 1~2년이나 길게는 몇 년씩 연명한 환자들이 있었다”며 “지금은 바로 호스피스 병동에 가는 실정이라 1분, 1시간, 1년이라도 생명을 연장하려는 시도를 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환자를 먼저 생각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공보의나 군의관이 일시적 도움을 줄 수 있어도 중증 환자를 위한 장기적 대안은 될 수 없다”며 “결국 전공의가 왜 떠나는지 다시 살펴보고 돌아오게 할 실질적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공의들도 그동안 대학병원에서 착취 당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느냐”며 “의대 증원으로 더 많은 전공의가 근무하면 혹사하는 환경도 나아질 거라는 점 등을 생각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의료개혁은 의대 정원 확대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숫자만 늘린다고 ‘지역 의료 붕괴’와 ‘수도권 의료 쏠림’을 해소할 수 없고, 증원 규모 조정만으로 의료계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김 회장은 “일본처럼 지역 의대 졸업생은 일정 기간 그 지역에서 근무하게 하는 ‘지역의사제’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며 “필수 의료 분야 의사를 늘릴 현실적 방안을 찾고, 의료전달체계에 잘못된 부분을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와 의료계가 더는 여유를 가지면 안 된다며 절박한 심정으로 갈등을 해소해 달라는 호소도 잊지 않았다. 그는 “2020년 전공의 파업 이후 4년 동안 합의점을 찾지 못해 여기까지 왔다”며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와 국민을 위해 양해를 부탁하면서 서로를 비난하느라 70여 일을 낭비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의사가 직업을 선택할 자유권이 환자 생명권보다 중요하진 않을 것”이라며 “정부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책무가 있다는 점을 떠올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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